강의 후 사회자가 조 전 부총리에게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었다. 그때 필자는 조마조마한 마음이 들었다. 혹시라도 지식을 너무 가볍게 생각하는 것 같다고 코멘트하면 어쩌나 하고. 그런데 결과는 그게 아니었다. 조 전 부총리는 요즘도 길거리를 다니면 가끔 자신이 쓴 경제학 교과서를 잘 읽는다는 젊은이를 만난다고 얘기했다. 그러면서 그때마다 책의 내용이 엉터리가 되었으니 더는 읽지 말라고 한다고 말했다.
지난해 세계적으로 금융위기가 발생한 이후 미국식 신자유주의가 많은 비판을 받고 있다. 자본주의 운영의 기본틀이 바로 개인의 창의와 시장의 자율인데 이를 위해서는 한동안 정부 역할의 최소화가 정답인 양 인식됐다. 시장에 대한 정부의 간여는 대부분 불필요한 규제로 취급됐으며 그 결과 금융을 비롯한 민간의 활동영역에는 정부의 개입이 적을수록 좋다는 식이었다.
이런 상황이 최근 금융위기의 발생과 그 후 전 세계적인 경제위기로의 확산에 따라 여러 가지 논란을 낳는다. 어떤 사람들은 경제운영에서 시장 기능을 과신한 나머지 시장감독 기능 등 정부의 역할을 소홀히 했다고 주장하는가 하면 어떤 사람들은 자본주의 시스템 자체에 문제가 있다고까지 지적한다.
필자가 제기하고자 하는 문제는 이런 견해에 대해 당장 경제학자가 해야 할 일이 팽개쳐진다는 점이다. 어떤 제도도 완전무결하지는 않다. 어떤 제도도 완벽할 수는 없다. 자본주의 시스템도 항상 변화하는 가운데 보완되는 중이며 운영하는 방식도 마찬가지이다. 정부의 역할이나 시장의 기능에 대한 인식도 계속 조금씩 달라지고 있다. 이런 사정을 감안한다면 지금까지 주장한 학자의 이론이나 이를 토대로 쓴 수많은 경제학 교과서의 내용을 수정할 법도 한데 별 움직임이 없는 것 같아 유감이 아닐 수 없다.
그래서 필자는 경제학자의 분발을 촉구하고자 한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한국 경제학계가 주관해 주요 20개국(G20) 경제학자 미팅을 개최하라는 얘기다. 정부가 나서 내년도 G20 정상회의를 유치하는 데 성공했다. 올림픽 유치만큼의 효과가 기대된다고 한다. 온 국민이 기뻐할 일이다. 여기에 더하여 우리 주도로, 우리나라에, 전 세계 주요국 경제학계의 대표가 모여서 금융위기 이후 자본주의가 나아갈 방향과 정부 및 시장의 역할을 논의한다면 금상첨화가 아니겠는가.
이 문제는 당장 하나의 내용으로 결론이 날 성질은 아니다. 그러나 근래 개발도상국의 경제발전 모델을 새로 정립한 우리가 자본주의의 새로운 발전모델을 만들어가는 데까지 주도적인 역할을 한다면 이 또한 쾌거가 아니겠는가. 정부 차원의 행사에 그치지 말고 민간 차원의 행사로 확대할 때 G20 정상회의 유치 효과는 기대 이상이 된다. G20 정상회의가 더욱 빛이 나고 나아가 한국의 국제적 위상이 한결 높아지면서 명실상부하게 선진국에 진입하는 확실한 계기가 될 것으로 본다. 끝없이 계속되는 경제환경의 변화를 조금이라도 담아내는 미래의 경제학 교과서가 등장하는 계기도 될 것이다.
이영탁 세계미래포럼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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