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구에서는 민주주의와 산업화가 뿌리내리는 데 몇 세기가 걸렸다. 우리는 반세기 만에 압축성장과 압축민주화를 하다 보니 곳곳에서 소화불량증 같은 현상이 나타난다. 국민소득이 높아진다고 저절로 선진국이 되지는 않는다. 나라의 품격과 시민의식이 선진국 수준으로 고양돼 뿌리를 내려야만 진정한 선진국 대접을 받을 수 있다. 대한민국이 천박한 졸부나라 소리를 듣지 않기 위해서는 사회 구석구석에서 손봐야 할 데가 한둘이 아니다.
이명박 대통령은 어제 “G20 정상회의 유치는 대한민국이 아시아 변방에서 벗어나 세계의 중심에 서게 됐음을 의미한다”며 국격(國格)을 한층 높이는 기회로 삼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21세기 국제사회에선 국력의 전통적 요소인 경제력 군사력 등 하드파워보다 국가의 품격 이미지 등 소프트파워가 부각되고 있다. 어윤대 국가브랜드위원회 위원장은 “외국에선 한국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로 북한 문제, 국회를 비롯한 정치와 폭력 시위를 꼽는다”고 말했다. 우리의 폭력국회는 미국의 외교전문지 포린폴리시가 ‘세계 최악의 국회’로 첫손을 꼽을 만큼 나라망신을 시켰다. 폭력과 막말이 판치는 국회상이 인터넷 공간의 누리꾼까지 오염시켜 사회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이 심각하다.
우리 사회에는 법과 질서를 어기는 것을 독재정권에 대한 저항처럼 생각하는 문화가 아직도 남아 있다. 1987년 민주화 이후 22년이 흐른 지금에도 시위문화는 군사독재 정권 시절에 멈춰 서 있다. 이익집단들은 제 밥그릇 챙기기에만 눈이 어두워 타인에 대한 배려를 소홀히 하고 ‘떼법’이 법질서의 우위에 있다시피 한다. 민주주의의 콘텐츠 면에서 아직 우리는 선진국이 되기에 멀었다.
이 대통령은 정치권과 국민에게 품격을 주문하면서도 청와대와 정부, 공직자와 공공기관의 자세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대통령과 집권세력 그리고 공무원이 먼저 모범을 보여야 국민이 냉소하지 않고 따를 것이다. 지도층의 도덕성과 공선사후(公先私後) 정신, 행정의 투명도와 대국민 서비스 자세에서 가야 할 길이 아득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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