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범죄를 목적으로 한 여아 납치와 살해 사건이 잇따르던 지난해 4월 정부는 ‘아동·여성 보호대책 추진점검단’을 만들었다. 국무총리실 국무차장이 단장을 맡고 여성부와 법무부, 보건복지가족부, 교육과학기술부, 경찰청과 방송통신위원회 등 유관 기관의 국장급이 모두 참석하는 매머드급 회의였다. 점검단은 주로 학교나 놀이공원 등 생활주거지역 인근에서 발생하는 아동 성범죄를 감시하기 위해 폐쇄회로(CC)TV 설치를 확대하겠다고 약속했다.
국회도 아동 성범죄 대응책을 마련하느라 분주했다. 여야 할 것 없이 아동성범죄의 형량을 강화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정부가 밝힌 아동보호구역 내의 CCTV 설치 사업에도 동의해 지난해 예산 편성 과정에서 관련 사업비 명목으로 모두 100억 원을 배정했다. 사업 계획대로라면 올해 말까지 전국 75개 시군구의 786개 어린이보호구역에 1408대의 CCTV가 설치되어야 한다. 그러나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한나라당 유재중 의원이 관계 부처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올해 9월 말까지 설치된 CCTV는 142대에 그쳤다. 당초 목표의 11% 수준에 불과했다. 16개 광역단체별로는 부산과 대구, 광주, 대전, 울산, 강원, 전북, 전남, 경북, 경남 등 10개 광역 단체에선 설치율이 아예 0%였다. 서울과 경기도 각각 3%, 2%에 불과했다. 인천(94%)과 충북(100%) 충남(37%) 제주(36%)만 설치율이 높았다.
실적이 이처럼 저조한 것은 CCTV 설치를 위해서는 관제센터까지 함께 설치해야 하고, 지자체가 그 예산의 절반을 부담해야 하기 때문이다. 지자체가 예산 부족을 탓하며 사업 추진을 미루자 정부와 국회는 아무런 후속 대책 없이 수수방관만 했다. 정부가 예산집행 점검을 좀 더 철저히 했더라면, 또 국회가 정확한 사업 실태에 대한 선행 조사를 한 뒤 예산을 배정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클 수밖에 없다.
‘나영이 사건’으로 정부와 국회는 또다시 각종 대책을 쏟아내고 있다. 그러나 사건이 터질 때마다 일시적으로 호들갑을 떠는 관행이 반복되지 않을지 걱정이다. 새 대책 마련에 앞서 아동보호구역 내의 CCTV 설치 사업이 왜 진척되지 않았는지부터 살펴보고 실효성 있는 대책을 세웠으면 한다.
정원수 정치부 needj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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