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최종후]선거홍보-조작 막게 여론조사법 손봐야

  • 입력 2009년 10월 6일 02시 58분


정치권이 10월 국회의원 재·보궐선거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선거 때만 되면 여론조사와 관련한 이야기가 자주 등장한다. 최근에도 어느 정당의 공천과정에서 여론조사가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보도가 나왔다. 10년 전만 해도 선거 여론조사의 합법성에 관한 시비가 있었음을 생각하니 격세지감이 아닐 수 없다.

정치의식조사라는 이름의 선거 여론조사는 후보자에 대한 유권자의 지지 정도를 알기 위한 중요한 수단이고 여론 민주주의를 구현하는 중요한 수단이다. 2004년 총선과 2007년 대선에서도 유력 후보 사이의 단일화와 경선의 결과를 가르는 중요한 기준이 여론조사였다. 현대정치에서 선거 여론조사는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수단이다.

이런 여론조사에는 상당한 문제점이 있다. 여론조사가 너무 많아서 전화를 받아야 하는 일반 국민은 선거 때만 되면 전화 노이로제에 시달린다. 사업장 전화와 집 전화가 잘못 저장된 경우는 사업장으로 여론조사 전화가 자주 걸려와 업무에 지장을 주기도 한다. 경기 안산의 지역신문에는 재선거를 치르는 지역의 치킨 가게에 몇 분 간격으로 여론조사 전화가 걸려와 고객의 주문전화를 제대로 받을 수 없다는 하소연이 실렸다.

여론조사 전화공해로 국민이 보는 피해는 더 많다. 2004년 이후 새로 시행된 공직선거법에서 선거에 출마하려는 후보자 혹은 예비후보자의 홍보 수단이 크게 제약을 받자 지역에서 인지도가 낮은 후보자가 여론조사를 빙자해 전화를 자주 거는 사례가 대표적이다. 특히 전화로 조사원이 직접 설문을 하는 전화면접조사에 비해 비용이 적게 드는 컴퓨터를 이용한 자동응답조사(ARS)는 심각한 공해라고 할 만하다. 이번에 재선거를 하는 경남 양산에서도 ARS를 이용한 홍보성 여론조사로 상당수 주민이 짜증을 낸다고 한다.

국민에게 피해나 불편을 주면서 얻는 여론조사 결과는 대부분 일반에 공개되어 적절히 활용되지 못하고, 누군가의 서랍 속에서 보관되다가 사라진다. 일부에서는 실제 내용과는 관계없이 자신의 주장을 합리화하는 데 여론조사 결과를 사용한다. 모 정당 관계자는 특정 시점의 여론조사 결과를 놓고 어떤 날은 20%포인트 차라고 말했다가 다른 날에는 10%포인트 정도 차라고 말을 바꿨다. 국민의 진정한 뜻을 알기 위해서 여론조사를 하지 않고 자신의 목적을 관철하기 위한 수단으로만 생각하는 셈이다. 이쯤 되면 여론조사가 아니라 여론 조작이라고 하는 편이 옳을 듯하다.

공직선거법은 여론조사 결과를 공표하려면 조사기관과 방법, 표본추출 방법 등 조사의 신뢰성과 객관성 입증에 필요한 자료를 함께 공표하도록 규정했다. 또 설문지 분석자료 등 일체를 선거일 이후 6개월까지 보관하도록 만들었다. 앞서 말한 문제점을 감안하면 선거와 관련된 여론조사 관련 법안은 좀 더 정비할 필요가 있다. 후보자별 여론조사 최대 횟수를 제한하거나 조사 6개월 뒤 모든 결과를 의무적으로 제출하는 방안을 고려해 볼 수 있다.

자유로운 여론조사를 방해하고 제약하는 방안은 민주주의 발전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하지만 여론조사에 시달리는 국민의 피해는 최소화해야 한다. 또 여론조사를 통해 얻는 자료는 선거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 범위 내에서 공익적 목적과 학술적 연구자료로서 충분히 활용할 수 있어야 한다. 여론조사의 의미를 훼손하지 않는 범위에서, 자유로운 의견 표명에 지장을 주지 않는 범위에서 선거와 관련한 여론조사의 방법과 활용에 대해 고민하고 공론화를 통해 사회적 합의를 찾아야 한다.

최종후 고려대 교수 한국통계학회 국가통계연구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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