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육정수]軍가산점 문제를 再論한다

  • 입력 2009년 10월 9일 19시 33분


노무현 전 대통령은 재임 시절 “군대생활은 썩는 기간”이라고 했다. 국군 통수권자로서 부적절한 발언이라고 호된 비판을 받았지만 말인즉슨 옳았다. 20, 30년 전이나 지금이나 군필자와 현역 장병들의 그런 생각에는 별로 변한 것이 없다. ‘거꾸로 매달아도 국방부 시계는 돌아간다’는 군대 속담에서도 의무 복무 중인 젊은이들의 자조(自嘲)와 피해의식을 확인할 수 있다.

軍은 士氣를 먹고 사는 집단

군대는 사기(士氣)를 먹고 사는 집단이라고 한다. 사기가 떨어져 있는 병사들이 강한 군대를 만들 수는 없다. 이는 동서고금(東西古今)의 군대 역사를 봐도 변함없는 진리다.

로마제국 때는 시민권을 가진 사람만이 군인이 될 수 있었다. 갑옷과 철모, 방패, 창, 칼 같은 무기들은 개인 비용으로 마련했다. 하층민은 군인이 되고 싶어도 불가능했다. 따라서 군복무는 오늘날 개병제(皆兵制) 국가에서처럼 의무가 아니라 특권이었다. 그들에게 가장 가혹한 처벌은 무기 휴대 금지였다. 로마 군인들의 자부심과 명예의식은 1000년 이상 불멸의 제국을 이룬 바탕의 하나였다.

중세로 접어들어 십자군 전쟁 이후에는 유럽에 외국인 용병제도가 보편화했다. 직업군인제도의 모태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돈을 벌기 위해 고용된 외인부대에 충성심과 군기(軍紀)를 기대하기는 어려웠다. 그들은 전시(戰時)와 평시를 가리지 않고 도망치는 경우가 흔했다. 1789년 프랑스 혁명을 계기로 국민 주권(主權)시대를 맞으면서 프랑스를 필두로 각국이 국민 개병제를 채택했다. 나폴레옹 군대가 1806년 예나 전투에서 프러시아군을 격파한 배경에는 국민 군대의 높은 사기가 있었다.

군대는 이렇듯 시대적 환경에 따라 여러 형태로 변천해 왔지만 그 책무는 예나 지금이나 영토 수호와 국민 보호에 있다. 특히 지구상의 어떤 곳보다도 군사적 초긴장 상태에 놓인 우리 군으로선 강한 정신력과 빈틈없는 기강, 엄중한 경계태세가 긴요하다. 여기에는 국민의 지지와 사랑이 무엇보다 중요한 변수가 된다. 군인들의 헌신과 희생에 감사하는 사회적 기풍을 조성하기 위해 국가와 국민의 진지한 고민과 세심한 배려가 필요하다. 지도층과 부유층 자녀, 연예인, 운동선수들의 병역비리 만연은 상당수 젊은이가 군복무를 명예롭게 생각하지 않고 있음을 단적으로 드러내는 현상이다.

헌법 제39조 2항은 ‘병역의무의 이행으로 불이익한 처우를 받지 아니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현실은 다르다. 군복무를 마친 젊은이들이 사회에 진출하면서 가장 먼저 절감하게 되는 것이 바로 불이익이다. 과거 3년 정도의 군복무 시절에는 말할 것도 없고, 2년 정도인 요즘도 면제자 또는 단기 복무자에 비해 직장에서 사실상 불이익을 당한다. 들어갈 때 뒤진 호봉과 승진 차례는 퇴직할 때까지 좀처럼 따라잡기 어렵다.

군복무 가산점·인센티브 줘야

공무원시험 때 군필자에게 가산점을 주면 남녀평등 원칙에 어긋난다고 여성부와 여성단체들은 말한다. 하지만 이는 눈앞의 점수만을 보는 형식적 주장에 불과하다. 20대 초반 한창 대학에서 공부해야 할 나이에 2년의 공백은 치명적이다. 영어 중국어 등 외국어 습득만 해도 2년이면 유창한 실력을 갖출 수 있는 기간이다. 10년 전 헌법재판소의 위헌 결정은 5%의 군필자 가산점이 지나치다는 취지였지만 군복무로 잃은 시간은 점수와 비교될 수 없는, 회복 불가능한 불평등이다.

병무청의 재추진으로 2∼3%의 가산점제가 다시 논란의 테이블에 올랐다. 헌법 제39조 1항은 ‘모든 국민은 국방의 의무를 진다’고 규정하고 있다. 국방의 의무는 남녀 모두에게 있음을 선언한 것이다. 그렇다면 2년간 현역 복무를 한 남성에게는 면제되는 일부 남성 및 여성들과 실질적으로 평등해질 수 있는 보상책이나 인센티브 조치가 필요하다. 지원 입대하는 일부 여성에게도 마찬가지다.

정부는 국가안보를 위해 헌신하고 희생한 젊은이들이 명예롭게 살아갈 수 있는 사회기풍을 만드는 일에 앞장설 의무가 있다.

육정수 논설위원 sooy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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