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업계는 친환경차 지원에 중점을 두려는 정부의 의지를 높게 평가하는 분위기다. 한 경제학과 교수는 “이전에는 ‘친(親)서민정책’을 표방하면서 비상경제대책회의도 서울 남대문시장에서 여는 등 다분히 인기를 의식하는 모습이었는데, 이번에는 그나마 성장 동력을 강조한 점이 의미 있게 다가왔다”고 했다.
하지만 이번 발표 내용과 발표 형식을 보면서 몇 가지 우려를 감출 수 없었다. 우선 정부가 자동차회사도 아닌데 대량 생산을 뜻하는 ‘양산’이라는 표현과 2011년 하반기라는 구체적인 시한을 명시해 발표하는 게 타당한 것인지 의문이 들었다. 그런 결정은 자동차를 만드는 기업이 직접 해야 하는 것 아닐까. 정부의 발표 자료를 보면 기업들의 양산을 돕겠다는 수준이 아니라 아예 양산을 2년 앞당기겠다는 것이다. 이번 미국발 금융위기처럼 외부 요인 때문에 경기 전망이 갑자기 나빠지거나 기술 개발의 속도가 기대를 따라잡지 못해 수익성이 불투명할 때에는 정부가 책임을 지겠다는 뜻인지 알 수 없다.
정작 정부가 책임져야 할 부분인 구매자 지원책에 대해서는 “세제지원 여부는 시장 여건과 재정 상황 등을 감안해 검토하고, 외국사례 등을 참고해 다양한 구매 인센티브를 부여하는 방안을 추가 검토한다”는 정도로 얼버무렸다. 이 정도 발표 내용을 근거로 막대한 투자를 단행할 자동차업체들이 과연 있을지 모르겠다.
민간기업인 현대·기아차의 연구소에서 국가산업 정책의 공식 보고 행사가 열린 것이 행여 다른 경쟁기업의 기를 꺾는 것은 아닌지도 걱정되는 대목이다. 국내에는 엄연히 현대·기아차와 경쟁하는 3곳의 다른 자동차업체가 있다. 정부가 삼성전자 사업장에서 차세대 휴대전화 지원계획을 발표하거나, SK텔레콤 회의실에서 이동통신업계 지원책을 공개하면 어떤 논란이 벌어질까. 시장경제시스템에서 누가 누구를 봐준다는 일말의 의혹은 공정한 경쟁 여건을 해치는 암적 요소다. 발표 장소를 제공한 현대·기아차로서도 현 대통령 임기인 2011년까지 전기차 양산을 책임져야 하는 부담이 클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뜻이 좋아도 욕심이 지나치고 형식에 무신경하면 역효과가 생기는 법이다.
장강명 산업부 tesomio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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