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이공주복]여성과학자, 슈퍼우먼 아니다

  • 입력 2009년 10월 12일 02시 57분


‘미안하다고 표현하지 말고 고맙다고 표현하면 어떨까.’ 얼마 전 필자가 영국 대학교수인 제자에게 한 말이다. 그 제자는 연구중심대학(WCU) 프로그램으로 국내 대학에서 강의를 하고 있었다. 그의 과학자 남편 역시 영국 대학교수인데, 국내에 나와 있는 한 달 동안 남편이 어린 딸을 돌보는 것이 많이 미안하다고 해서다. 미안하다는 말은 뭔가 잘못했다는 것을 의미하고 죄책감을 동반할 수 있다.

연구-가정 양립 위한 정책배려를

올해 노벨 화학상 수상자 아다 요나트 박사는 수상소감에서 개인으로나 과학자로나 자신을 여성이라고 생각하고 산 적이 없다고 했다. 여러 의미로 해석할 수 있겠으나, 필자는 이 말을 여성의 전족(纏足)을 최소한 스스로 받아들이지는 않았다는 의미로 읽었다.

올해 노벨 과학상 수상자의 3분의 1이 여성인 것은 남성 중심적인 과학계에 비추어볼 때 매우 획기적이다. 더구나 이 3명의 여성 수상자 중 2명이 받은 ‘로레알 유네스코 세계여성과학자상’은 우리나라에도 2명의 수상자가 있어 매우 고무적이다. 이미 우리나라의 첫 노벨 과학상은 여성일 것이라고 예측한 이들도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현실은 여성과학자에게 그리 우호적이지 않다. 올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서 발간한 ‘한국 혁신정책 심층분석’에 따르면 이공계 여성인력 양성은 OECD 국가 평균 수준이지만, 이들의 활용은 최하위다. 즉 이공계를 졸업한 여성의 연구활동이나 경제활동 참가율이 저조하다는 것이다. 가장 큰 장애물은 여성과학자의 경력 정체 및 단절로 이어지는 결혼 출산 육아 등의 부담이다.

노벨 과학상은 과학자로서는 매우 영예로우나 목적이 될 수 없다. 남녀불문하고 끊임없는 호기심과 이를 해결하려는 열정, 그리고 찾아낸 자연의 신비로움에 대한 감탄을 자유롭게 느낄 수 있는 과학자가 많을 때 비로소 노벨 과학상 수상자가 나올 것이다. 이런 점에서 여성과학자의 경우 남성보다 좀 더 많은 개인적 의지와 정책적 배려가 필요하다고 본다.

개인적 의지라 함은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전통적인 여성과 남성의 업무 구분을 스스로 짊어지는 슈퍼우먼 신드롬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과학기술 연구는 장시간 고도의 집중력이 요구된다. 가정의 최고경영자(CEO)를 두 명으로 하는 공동대표 체제로 전환하면, 여성은 연구에 몰두하는 시간을, 남성은 자녀와 소통하는 시간을 좀 더 가질 수 있다.

정책적 배려라 함은 정부 차원에서 ‘연구-가정’을 잘 양립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을 의미한다. 우수한 여성과학기술인력이 출산 육아 등으로 연구 현장을 떠나거나 연구 능력이 저하되는 것을 적극적으로 예방해야 한다. 이를 위한 지원정책으로 영유아가 있는 이공계 대학원생을 지원하는 ‘엄마펠로십’, 출산 육아 등으로 연구경력 단절이나 정체가 된 여성과학자에게 최소 인건비와 연구비를 지원하는 ‘리터너펠로십’, 여성과 남성의 연구-가정 양립(Research-Family Balance)을 위해 조직문화를 혁신하는 기관에의 지원 등을 제안한다. 여성과학자 사이에서 여러 번 오르내리던 ‘출산가산점제’나 조부모가 어린 손자녀 양육을 위해 휴직하는 ‘조부모 육아휴직제’ 등도 다시 제안한다.

수십년 지원해야 노벨상도 나와

2008년까지 12명에 불과했던 여성 노벨 과학상 수상자 수를 단번에 15명으로 올린 2009년. 3명의 수상자 중 2명이 미국에서 나온 것을 볼 때, 이는 1년의 성과가 아닌 수십 년간 지속된 ‘소수보호정책’의 성과다. 연구에 전념하고 싶은 여성과학자가 ‘맘 편히’ 연구에 전념할 수 있는 사회가 빨리 될수록 여성 노벨 과학자상 수상자가 빨리 나오리라 기대한다.

이공주복 이화여대 물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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