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난화로 알래스카와 시베리아가 따뜻해지면 풍부한 지하자원을 개발해 미국 캐나다 러시아는 더 부국이 될 것이다.” 알래스카에 취재를 다녀온다고 하자 주변에서 들려준 말이다.
온난화로 고향을 떠날 에스키모 사람도 살기 어려운 척박한 땅, 알래스카는 온난화로 몸살을 앓고 있다. 1만 년 전에 언 동토(凍土)가 녹아 지반이 꺼지고 도로가 갈라졌다. 나무도 곧게 자라지 못해 이곳 사람들은 ‘술 취한 나무’라고 부른다. 호수가 바닥의 얼음이 사라져 말라버렸다. 동토의 해빙 자체가 재앙이다. 농사를 지을 수 있으니 좋을 것이라는 생각은 잘못이다. 동토연구가인 로마노프스키 알래스카대 교수는 “동토가 녹아 이산화탄소가 배출되면 지구의 이산화탄소 농도가 높아져 기상 재앙이 올 수 있다”고 경고한다. 동토는 함부로 개발할 대상이 아니다. 알래스카 에스키모 마을에는 방파제 역할을 하던 해변의 얼음이 녹아 해안 침식이 심하다. 해안가 주택이 무너질 위기에 놓였다. 30여 개의 에스키모 마을이 이주해야 할 처지다. 따뜻해져 살기 어려워지는 동토의 역설(逆說)이다. 미국 정부는 이들을 이주시켜야 한다면 어디로 할지 고민이다. 수렵이 주업인 이들을 아무 곳에나 보낼 수도 없는 노릇이다. 자연재해 때문에 고향을 떠나야 할 처지가 된 에스키모를 보면 착잡해진다. 우리가 문명의 이기(利器)를 누리며 쏟아낸 온실가스 때문에 고생하는 이들에 대한 미안한 마음이 든다. 북극 빙하도 녹는다. 2007년에는 수백 년 동안 가장 극적으로 빙하가 줄어들어 북극 항로가 새로 열렸다. 동아시아에서 북극을 거쳐 유럽으로 바로 갈 수 있다. 이 항로를 이용하면 한국의 항구들이 가장 큰 덕을 볼 것이라는 지적도 있다. 하지만 북극의 자연재해는 언젠가는 우리에게도 다가올 수 있다. 눈앞의 이익만 생각할 처지가 아니다. 지구촌의 자연재해는 우리가 사는 온대지역보다 열대나 북극에서 더 심하다. 알래스카 산불이 극심했던 2004년에 인도네시아에선 해일로 수만 명이 몰살을 당했다. 열대나 극(極)지역은 기후 변화의 영향이 민감하게 나타난다. 탄광 막장에 놓인 카나리아 새와 같은 존재다. 지구촌 자연재해가 온난화의 영향이 아니라는 주장도 있지만 직접 피해를 당해본 사람들은 환경의 소중함을 안다. 주변 고산(高山)의 만년설이 녹아 관광객이 줄어든 시애틀과 환경오염이 심한 로스앤젤레스는 에너지를 절약하고 이산화탄소 배출을 줄이려는 노력이 다른 곳보다 활발하다. 연방정부가 기후변화협약에 가입하지 않았지만 지방정부 차원에서 에너지 절약과 이산화탄소 배출량 줄이기에 적극 나서고 있다. 환경의 축복이 저주로 바뀔 수도 한반도는 자연의 축복을 받은 곳이다. 기온 강수량 자연재해 등 어느 모로 보나 알래스카보다 사람 살기에 좋은 환경이다. 하지만 자연재해의 피해를 거의 모르다 보니 자연의 소중함과 고마움을 절실하게 느끼지 못한다. 알래스카와 같은 오지의 자연재해를 우리와는 상관없는 남의 일로만 여기는 것은 아닐까. 천연자원 부국들은 ‘자원의 저주’를 받는다. 자원을 둘러싸고 내전이 벌어지거나 내부 갈등이 심한 자원 부국이 많다. 자원의 소중함을 모르고 마구 쓰다 보니 오히려 경제성장이 둔화된다. 자연환경의 축복을 받은 우리도 온난화로 인한 재앙을 남의 일로만 치부한다면 ‘환경의 저주’를 받게 되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든다. 올 12월 덴마크 코펜하겐에서 열리는 유엔 기후변화협약 당사국 총회가 그 시험대가 될 것이다. 박영균 논설위원 parky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