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이지연]베트남의 한류, 스킨십 늘려야 오래간다

  • 동아닷컴
  • 입력 2009년 10월 21일 03시 00분


18일 오전 11시 베트남 하노이 공항. 이날 저녁 열리는 ‘한-베트남 우정 페스티벌’에 참석하기 위해 그룹 ‘소녀시대’가 입국하기 두 시간 전이었다. 공항 가득 팬들이 모였을 것으로 예상했지만, 30여 명만이 그룹의 사진을 새긴 부채를 들고 있었다.

‘베트남에서 한류(韓流)가 식은 것일까’라는 생각이 들어 한 여성 팬에게 소녀시대가 인기가 많은지 물었다. 그는 갑자기 소녀시대의 ‘소원을 말해봐’를 부르며 춤을 추더니 “소녀시대 베트남 팬클럽 회원이다. 다른 팬들은 아침 일찍부터 기다리다가 잠시 쉬러 갔다”고 말했다. 그의 말대로 입국 시간이 다가오자 팬은 500여 명으로 불어나 입국장을 메웠다. 인파가 몰린 탓에 한국 내 일정으로 유리가 빠진 소녀시대의 멤버 8명 중 윤아 제시카 써니 등 세 명은 미리 대기하고 있던 차에 타지 못하고 다른 차를 타야 했다.

하노이 공항에서부터 실감했던 ‘베트남 한류’의 열풍이다. 중국 등 아시아에서 한류가 위기라는 말이 나오지만 이곳 상황은 달랐다. 같은 페스티벌에 출연한 한국 신인 남성그룹 유키스의 현지 팬들도 멤버 6명의 이름을 적은 플래카드를 흔들며 노래를 따라 불렀다. 팬들은 한국 취재진에게 같이 사진을 찍고 사인을 해달라고 했다.

하노이 사범대에 교환학생으로 재학 중인 최유빈 씨는 “가수 G드래곤이 한국에서 ‘하트브레이커’를 발표한 바로 다음 날, 베트남 TV음악 프로그램에 시청자들이 휴대전화 메시지로 ‘하트브레이커’를 신청할 정도”라고 말했다.

베트남에서의 한류는 다른 아시아 국가와 마찬가지로 10여 년 전부터 꾸준하게 일어나고 있다. 요즘 베트남 젊은층에서는 빅뱅 동방신기 소녀시대 2NE1 등 아이돌 가수들과 KBS 2TV ‘꽃보다 남자’에 출연한 배우 이민호가 인기라고 한다. 하지만 한류라는 신조어를 만든 중국에서는 ‘혐한류(嫌韓流)’라는 반발이 나온 지 오래다. 한류 스타들이 중국에서 돈만 벌어간다는 인상을 주거나, 팬들과 가슴을 터놓을 수 있는 만남을 갖는 데 인색했기 때문이다.

국립 하노이대 한국어과에 다니는 도안티투짱 씨는 “개방과 함께 한국 스타 대신 베트남의 젊은 스타를 좋아하는 사람도 늘어났다”며 “이번 행사처럼 해외 팬을 찾는 한국 스타가 늘어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한류 초기와 달리 베트남 문화계도 이제는 자기 나라의 스타들을 만들어 내고 있으므로 한류를 보는 눈이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이다.

티투짱 씨의 말은 베트남에서는 아직 혐한류라는 말이 낯설지만 한류 스타들이 팬들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를 고민해야 한다는 ‘조언’으로 들렸다. 중국의 혐한류에서 얻은 교훈을 베트남 한류 스타들이 되새겨야 한다. ―하노이에서

이지연 문화부 chanc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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