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구자룡]‘안중근 의거 100돌 행사’ 발빼는 中하얼빈市

중국 헤이룽장(黑龍江) 성 하얼빈(哈爾濱) 시에서는 19일부터 23일까지 ‘제4회 하얼빈 한국주(週) 행사’가 열리고 있다. 한국의 문화를 알리는 행사도 있지만 한국 기업의 투자를 유치하고자 하는 게 주목적이다. 지난해 8월 CJ제일제당은 헤이룽장 성에서 생산된 쌀에서 추출한 단백질로 식품첨가제를 만드는 공장 3곳을 세우면서 2억1000만 위안(약 378억 원)을 투자해 손꼽히는 외국 투자기업이 됐다.

중국 동부 연안지역에 비해 상대적으로 ‘오지’인 하얼빈 시가 한국 기업 유치에 눈을 돌리게 된 것은 ‘안중근 의거’의 가치를 재발견하면서부터다. 안 의사가 1909년 10월 26일 한반도 침략의 원흉인 일본의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를 사살한 곳이 아니라면 하얼빈은 한국인에게 거의 알려지지 않았을 것이다. 하얼빈 시가 2006년부터 한국주 행사를 하면서 몇 가지 ‘안중근 기념사업’을 벌인 것도 이 때문이다.

하얼빈 시는 2006년 7월 하얼빈 조선족 문화예술관 2층에 500m² 규모의 ‘안중근 의사 기념실’을 마련했다. 기념실엔 300여 점의 자료가 전시돼 있다. 안 의사가 거사 계획을 구상했던 시내의 당시 하얼빈(현재 자오린·兆麟) 공원에는 그의 친필 글씨가 새겨진 비석이 세워졌다. 안 의사의 거사 현장엔 저격 지점까지 선명하게 표시돼 있다. 이 같은 하얼빈 시의 안중근 기념사업은 한국인에게 동질감과 친밀감을 준 게 사실이다.

그런데 올해 안 의사 의거 100주년을 맞아 의거일인 26일 독립기념관 등이 현지에서 진행하려던 기념식이 중국 측의 요청으로 축소될 예정이다. 주중 한국대사나 주선양 한국총영사의 초청 계획이 무산되고 하얼빈 시도 부시장급이 참석한다고 했다가 뒤늦게 취소해 민간행사처럼 치러질 것으로 전망된다. 광복회 주관으로 안 의사가 순국한 뤼순(旅順) 감옥에서 진행하려던 ‘국제 항일열사 기념관’(안 의사 등 독립운동가 추모관)의 공식 개관식도 못하게 됐다. 이는 일본의 눈치를 본 중국 측의 요청 때문이라는 게 관계자들의 분석이다.

중국의 저우언라이(周恩來) 전 총리도 높이 평가했던 안 의사 의거의 기념행사를 중국 정부가 이처럼 홀대하는 것은 사리에 맞지 않는다. 안 의사를 투자 유치용으로만 이용하거나 정의를 세우는 역사 문제를 두고 일본의 눈치나 보는 것도 대국의 품격에 맞지 않는다. 특히 한국인과 함께 일제 침략으로 굴욕을 당했던 중국인의 자존심이 더더욱 허락하지 않을 것이라고 본다.

구자룡 베이징 특파원 bonh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