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이란 숫자는 실로 오묘하다. ‘없다’를 있다고 하는 능글스러운 숫자. 자연계에는 존재하지 않는 개념이다. 음수와 무한대는 탄생 과정으로 볼 때 0의 동생뻘이다. 0의 발견으로 대수학은 첫걸음을 뗐고 기하학이 대세였던 초기 문명은 비로소 가속도를 내게 됐다. 그래서 일부에선 0이야말로 인류 최고의 발견이라고 말한다. 진공(眞空)을 뜻하는 0은 철학과 종교에서도 최고의 화두로 자리매김했다.
하지만 이 0이란 녀석은 완벽을 추구하는 대수학에서 치명적인 오류를 일으키는 흉악범이기도 하다. 0은 나눌 수는 없는 숫자다. 1÷0은 답이 없고, 0÷0은 답이 너무 많다. 수식으로 표현하면 1÷0=ⅹ는 1=ⅹ×0과 같고 이 등식을 만족하는 ⅹ는 세상에 없다. 이때 ⅹ는 정확하게 말하면 무한대에 수렴한다고 한다. 반면 0÷0=ⅹ는 0=ⅹ×0이고 이 ⅹ는 어떤 수라도 상관없다. 수학에선 앞의 것을 불능(不能), 뒤의 것을 부정(不定)이라고 한다.
스포츠에서 0과 비슷한 개념이 무승부다. 여기서 문제 하나. ①1승 5무 ②2승 3무 1패 ③3승 1무 2패 중 승률이 높은 순서대로 쓰면? 잘 모르겠으면 하수, 퍼뜩 답이 나왔다면 중수, 그때그때 다르다고 하면 고수다. 답이 여러 개인 이유는 바로 무승부 때문이다. 무승부를 처리하는 방식은 종목별로, 나라별로, 시기별로 다르다.
무승부를 계산에서 제외하는 일반적인 승률로 따지면 ①100%(1승) ②66.7%(2승 1패) ③60%(3승 2패) 순이다. 이 방식의 단점은 5할 이상 승률일 경우 무승부가 많을수록 유리하다는 것이다. 단적인 예로 1승(99무) 팀이 99승(1패) 팀을 앞선다. 100무 팀의 승률은 0÷0의 부정이 되기도 한다. 반면 다승제로 하면 ③3승 ②2승 ①1승의 역순이 된다. 이 방식도 문제가 있다. 99패(1승)를 한 팀이 한 번도 안 진 100무 팀을 이긴다. 올해 국내 프로야구가 도입한 ‘무승부=패배’ 제도는 다승제의 변형이다. 일반 승률제였다면 올해 정규시즌 1위는 KIA(81승 4무 48패)가 아니라 SK(80승 6무 47패)가 된다.
1무를 0.5승과 0.5패로 나눠 승률을 계산하는 방식과 승차제(승수-패수)도 있다. 이 경우 ① ② ③의 순위는 같다. 하지만 이 또한 한 번도 안 진 1승 99무 팀이 반타작을 겨우 넘긴 51승 49패 팀에 뒤지는 결과를 초래한다. 축구의 승점제(승리=3점, 무승부=1점, 패배=0점)로는 ③10점 ②9점 ①8점 순이다. 이는 일견 앞의 방식들을 보완한 것으로 보이지만 더 큰 허점이 있다. 한 번도 안 진 100무 팀이 승률 34%에 불과한 팀(34승 66패)에 뒤진다.
결국 순위를 가리기 위해 어떤 방식을 사용하든 무승부가 끼어 있는 한 모든 팀을 만족시킬 수 없다는 결론이 나온다. 무승부도 미학이라고 하면 할 말이 없다. 하지만 모든 스포츠는 그 기원을 살펴보면 승부를 가린다는 전제에서 출발했다. 메이저리그가 밤을 새워 경기를 하고 축구 야구의 결승전과 골프의 연장전이 끝까지 승부를 가리는 것은 이 때문이다. 물론 일몰이나 악천후로 공동 우승이 나오는 경우도 있긴 하지만 역시 팬들은 승부를 원한다. 선수층이 엷은 국내 현실에서 끝장 승부는 무리가 따를 수 있다. 하지만 무승부의 오류를 피하기 위한 유일한 방법은 무승부를 없애는 것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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