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한기흥]퍼스트레이디의 손맛

  • 동아일보
  • 입력 2009년 10월 26일 03시 00분


이명박 대통령의 부인 김윤옥 여사의 활동이 부쩍 활발해졌다. 우리 음식을 세계에 널리 알리는 데 앞장서고 있고, 다문화가정 관련 행사 등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김 여사는 미국 CNN 방송이 지난주 방영한 ‘Eye on South Korea’라는 한국 특집 프로그램에 출연해 잡채와 파전을 직접 만들면서 한식의 우수함을 설명했다. 앞서 9일 서울을 방문한 하토야마 유키오 일본 총리의 부인 미유키 여사와는 함께 김치를 담그면서 양념을 버무린 배춧잎을 미유키 여사의 입에 넣어주기도 해 눈길을 끌었다. 김 여사는 지난달 미국 뉴욕에서도 6·25 참전 용사들에게 직접 파전을 부쳐 입에 넣어 주었고, 뉴욕타임스는 “김 여사가 요리 외교 분야에서 새로운 경력을 쌓았다”고 보도했다.

김 여사는 그동안 군부대를 방문해 병사들을 껴안으며 격려하고, 복지시설을 찾아 직접 빨래와 설거지를 하는 등 소탈한 모습을 보여 왔다. 청와대는 김 여사의 수더분하고, 인간적인 면모가 이 대통령의 이미지를 보완하는 데 도움이 될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고 한다. 김 여사가 요즘 주 2, 3회 청와대 외부 행사에 참석하는 것도 그 때문일 것이다.

김 여사가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이런 활동을 할 수 있는 건 그가 대통령의 부인이기 때문이다. 영부인은 법적인 권한은 없지만 많은 사람들로부터 주목과 존중을 받기 때문에 본인이 하기에 따라선 적지 않은 사회적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

그러나 한국의 역대 영부인들 가운데 국민으로부터 긍정적인 평가를 받은 분은 별로 없는 것 같다. 박정희 대통령의 부인 육영수 여사가 서민의 아픔을 보듬는 따뜻한 손길과 미소로 지금도 중장년층에서 퍼스트레이디의 전형으로 기억될 뿐 그 후 영부인들은 대체로 국민의 박수를 받지 못했다. 대통령이 정통성이 없거나 국민의 지지를 받지 못해서, 또는 자식이나 친인척이 비리나 구설에 휘말리는 바람에 역대 영부인들은 국민 앞에 얼굴을 들고 당당히 나서기 어려웠다. 김 여사도 사촌언니 김옥희 씨가 지난해 18대 총선을 앞두고 국회의원 비례대표 공천 대가로 30억여 원을 받고 사법처리돼 “국민에게 죄송하고 송구하다”며 곤혹스러워한 일이 있다. 최근 사돈의 기업인 효성을 둘러싼 각종 의혹이 불거지는 것도 부담스러운 대목이다.

영부인이 국가와 사회에 도움이 되는 활동을 하는 건 바람직한 일이다. 굳이 외국의 사례나 시대적 흐름을 거론할 필요도 없다.

김 여사는 3월 정부 정책홍보지 ‘위클리 공감’ 창간호 인터뷰에서 “청와대에서 대통령께 쓴소리를 하는 역할은 제가 하고 있어요”라고 말했다. 이 대통령에게 비판적 여론을 전하는 야당 역할을 하며 소통에 신경을 쓰고 있다는 얘기였다. 김 여사가 그런 열린 마음으로 우리 사회의 그늘진 곳을 돌봤으면 한다.

그러려면 김 여사를 둘러싼 잡음이 나오지 않도록 먼저 주변부터 더 엄격히 단속할 필요가 있다. 영부인이 공적인 활동에 의욕을 보이면 거기에 편승하려는 사람들이 나올 수도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그런 일로 물의를 빚은 영부인도 있었다. 국민은 겸손한 자세로 사심 없이 봉사하는 영부인을 기대한다. 실패한 영부인이 더는 나와선 안 된다.

한기흥 정치부장 eligiu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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