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이진녕]재·보선 않고 민주주의 하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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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09년 10월 26일 20시 02분


지금 10·28 재·보궐선거를 위해 뛰고 있는 사람이나, 내년에 있을 재·보선을 준비하고 있는 사람들한테는 미안한 말이지만, 왜 지금과 같은 재·보선을 해야 하는지 이해할 수가 없다. 무엇을 위한 재·보선인가.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행정 공백을 막기 위해? 명분은 그럴싸하지만 내용을 들여다보면 공허하기 짝이 없다는 것이 솔직한 생각이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5곳에서 실시되는 이번 국회의원 재·보선을 위해 66억 원의 선거비용을 배정했다. 한 곳당 13억 원꼴이다. 노무현 정부 5년, 이명박 정부 1년 반 동안 이런 선거가 1년에 두 번씩, 모두 521곳에서 있었다. 선거 종류별로 보면 국회의원 27곳, 광역단체장 4곳, 기초단체장 72곳, 광역 및 기초의원 416곳, 시도교육감 2곳이다. 선거비용으로 총 1600억 원 정도가 소요됐다. 국회의원 선거는 국고에서, 지방선거는 해당 자치단체에서 비용을 부담한다. 예산이 부족한 지자체로서는 힘에 겨운 짐이다.

경북 청도군은 2005년부터 2008년까지 4년에 걸쳐 매년 군수 선거를 치렀다. 2006년의 정기 지방선거 외에 세 번의 재·보선이 있었기 때문이다. 군수 선거를 할 때마다 약 5억 원이 든다. 재정자립도가 10%에 불과한 청도군으로선 작지 않은 부담이다. 돈도 돈이지만 잦은 선거로 인한 주민들의 피로감은 돈으로 환산할 수도 없다. 도대체 누구를 위해 이런 재·보선을 계속해야 하는가.

재·보선 투표율은 보통 20∼30%대다. 지자체장이나 지방의원 선거구에선 10%대를 기록하는 경우도 더러 있다. 재·보선에 대한 유권자의 관심도가 어떠한지 알 수 있다. 아무리 다수결을 쫓는 선거라지만 냉정히 따지면 대표성에도 문제가 없지 않다. 이런 마당에 재·보선 결과를 정권에 대한 중간평가의 잣대로 삼는 것은 심한 과대포장이다.

재·보선 사유를 보면 불법 정치자금 사용이나 불법 선거운동, 정치자금 수수로 인한 당선 무효와 피선거권 박탈 때문이 약 70%다. 다른 공직 출마를 위한 자진 사퇴에 따른 보궐선거도 꽤 많다. 당선인 본인과, 관리를 소홀히 한 정당에 대부분 귀책사유가 있음에도 이들에겐 하등 책임을 지우지 않는다. 자기책임성이 결여된 정치는 민주주의의 진보가 아니라 퇴보를 부른다.

선거에서 소모적인 정쟁(政爭)과 사생결단의 대결이 펼쳐지는 것도 우리의 폐단이다. 그럴 때마다 국민의 가슴은 분열과 반목으로 멍이 들곤 한다. 지방에서 재·보선을 치러본 사람일수록 이런 점을 실감한다.

그런데도 지금의 재·보선 제도를 그대로 유지해야 옳은가. 마침 한나라당 정치선진화특위(위원장 허태열)가 모든 재·보선을 사실상 폐지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재·보선의 원인을 제공한 정당이 아닌 2순위 정당의 비례대표 후보가 자동 승계토록 하자는 게 핵심이다. 예외로 2위가 무소속이거나, 비례대표 후보 자체가 없는 광역·기초단체장의 경우는 지금처럼 재·보선을 치른다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문제점을 지적하지만 상당히 일리 있는 방안이라는 생각이 든다. 프랑스와 독일도 이와 유사한 제도를 폭넓게 도입하고 있다. 청도군의 사례를 보면 단체장도 궐위가 생길 때마다 반드시 재·보선을 해야 하는 건지 따져볼 필요가 있다.

선거도 이제 합리적 실용적으로 할 때가 됐다. 여야가 정략을 개입시키지 않는다면 얼마든지 좋은 대안을 찾아낼 수 있을 것이다.

이진녕 논설위원 jinny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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