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외무성의 이근 미국국장이 최근 미국을 방문해 샌디에이고 캘리포니아대(UCSD)가 개최한 국제회의에 참석했다. 30일에는 뉴욕의 전미외교정책회의(NCAFP)와 코리아소사이어티가 공동 주최하는 모임에도 참석한다. 미 국무부는 스티븐 보즈워스 대북정책특별대표의 평양 방문을 준비 중이고, 그 전에 사전 절충을 위해 성 김 대북특사가 이 국장과 접촉할 예정이다.
버락 오바마 정권은 북한의 미사일 시험발사와 핵실험에 대해 조지 W 부시 정권의 ‘협박과 회유’ 정책과는 사뭇 다르게 대응해왔다. 6자회담의 틀을 벗어난 북한과의 직접 교섭을 거부하고 대북 제재를 위해 필립 골드버그 조정관을 새로 임명하는 등 유엔안보리의 제재 결의를 엄격하게 이행해왔다.
반면 북한과의 장래 관계를 염두에 두고 ‘일괄타결식 포괄적 해법’의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고 있다. 전반적으로 보면 협박도 회유도 아닌 무시정책이 성공한 듯 보이고, 북한도 더는 도발을 지속할 수 없을 것 같다.
이 같은 추측을 뒷받침하듯 그동안 강경조치를 취해 온 북한은 빌 클린턴 전 미 대통령의 평양 방문 이후 ‘벼랑 끝 정책’에서 ‘명예스러운 후퇴’를 시작했다. 김대중 전 대통령 서거 직후 고위급 조문단을 서둘러 서울로 보내 청와대를 방문하도록 했고 남북 이산가족의 재회에도 응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평양을 방문한 원자바오 중국 총리를 통해 ‘6자회담을 포함한 다국간 회담’을 받아들일 의사가 있음을 밝히기도 했다.
핵실험이나 경제 제재와 같은 강제적 외교수단 대신 이제 슬슬 비핵화의 내용과 조건을 놓고 교섭이 시작되는 분위기다. 북-미 양국은 서로 자기에게 유리한 형식으로 교섭을 재개하려 하고 있다. “핵무장한 북한에 대한 제재 없이 정상적인 국교관계를 맺는 것은 결코 안 된다”거나 “핵문제를 해결하려면 북-미 간 평화협정을 체결해야 한다”는 등 설전이 오가고 있다.
유감스럽지만 설혹 북-미 대화에 이어 6자회담이 재개된다고 해도 북한이 쉽사리 핵개발을 완전 포기할 것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북한이 평화협정을 고집하면 6·25전쟁의 직접적인 당사자끼리의 회담이 성사되고 그 결과로써 평화협정이나 국교정상화를 포함한 전면적인 합의가 북-미 간에 달성된다고 해도 북한이 핵개발의 완전 포기를 즉시, 그것도 전면적으로 실행하는 것은 불가능할 것이다. 그것은 수년이 걸리는 장기 로드맵이 될 수밖에 없다.
이제부터 시작될 북한과의 쉽지 않은 외교는 북핵 문제를 둘러싼 약 20년에 걸친 대립과 외교의 총결산이 될 것이다. 또 그것은 한반도의 평화체제나 북한의 체제유지와 직접적으로 관련된 중대한 교섭이기도 하다. 이 같은 중차대한 교섭은 전적으로 김 위원장의 건강에 좌우될 수밖에 없다. 김 위원장 사후의 혼란스러운 북한과의 교섭은 상상할 수 없기 때문이다.
남은 시간은 적지만 북한에 대한 한미일의 협조 외교는 유례를 찾을 수 없을 정도로 긴밀하게 유지되고 있다. 김대중 노무현 정권의 포용정책을 부정하고 ‘비핵개방 3000’을 내세우고 있는 이명박 정권은 북한과의 포괄교섭을 주장함과 동시에 중국이나 러시아를 포함한 4개국과의 긴밀한 공동행동도 꾀하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한국에 기대되는 것은 북한과의 단독교섭이 아니라 미국 등 나머지 4개국과 공동으로 보조를 맞춰가는 역할이다.
철저한 비핵화의 실현은 반드시 필요하다. 그러나 이를 위해서는 대담하면서도 한층 유연한 당사자끼리의 공동행동이 요구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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