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타임스와 워싱턴포스트를 비롯한 외국 언론의 10월 1일자 첫 지면을 커다랗게 장식한 뉴스는 아프리카에서 발견한 440만 년 전의 인류 화석 ‘아르디(Ardi)’였다. 세계 최고의 과학 잡지 ‘사이언스’가 이례적으로 특집호를 발간할 정도였다. 새로운 인류 화석 발견이 인류학자에게 큰 뉴스거리임은 분명하지만 대중적인 관심을 불러일으킨 적은 많지 않다. 무엇이 아르디를 특별한 존재로 만들었을까.
아르디의 발견부터 연구까지의 과정은 대단한 인내심이 필요한 작업이었다. 1992년에 미국 에티오피아 일본을 비롯한 10개 나라의 인류학자 고고학자 고생물학자 지질학자 해부학자로 구성된 발굴팀은 에티오피아의 외딴 골짜기에서 최초 인류가 어떤 모습이었는지에 해답을 줄 만한 화석을 수백 점 발견했다. 사람 손이 살짝 닿기만 해도 가루로 부서질 만큼 보존 상태는 좋지 않았다. 발굴팀은 화석이 박힌 흙 전체를 떼어내 실험실로 옮기고 하나씩 약품 처리를 해서 굳힌 후에 화석을 분리했다. 이 과정을 끝내는 데에만 4년이 걸렸다.
다음 순서는 분리한 화석 조각을 입체 퍼즐을 맞추는 식으로 온전한 뼈대의 형태로 붙이는 일이었다. 화석 조각은 일본 도쿄대로 옮겨 정밀하게 컴퓨터단층촬영(CT)을 한 후에 컴퓨터를 이용해 복원했다. 이 과정에도 몇 년이 걸렸다. 아르디를 발견한 지 여러 해가 흘렀고 화석 조각을 복원하는 데 성공했지만 본격적인 연구는 이때부터였다. 아르디의 뼈대가 정확히 인류 진화사에서 어떤 의미를 갖는지 밝혀내려고 두개골 팔뼈 다리뼈 골반뼈를 정밀하게 연구하기 시작했다.
1974년 발견된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인류 화석인 ‘루시’ 화석과의 비교, 사람과의 비교, 인간과 유전적으로 가장 가까운 동물인 침팬지 고릴라와의 비교까지 다양한 각도에서 아르디의 뼈대를 10년간 분석했다. 또 아르디가 살았던 440만 년 전의 아프리카 환경을 복원하기 위해 아르디와 함께 발견된 수천 점의 동식물 화석을 함께 연구했다. 십수 년에 걸친 연구 결과, 아르디가 아주 특별한 화석임이 밝혀졌고 이런 내용이 이달 초에 세상 빛을 보게 됐다.
사람과 침팬지가 공동 조상으로부터 갈라진 시기가 약 600만 년 전인데 그때부터 사람은 사람대로, 침팬지는 침팬지대로 각자 진화의 길을 걷는다. 사람을 사람답게 만드는 특징인 두 발 걷기, 큰 두뇌용량, 도구와 언어 사용은 진화 과정에서 나타났다. 아르디가 발견되기 전까지는 지금으로부터 320만 년 전에 살았던 루시가 지금까지 알려진 인류 화석 중에서 보존 상태가 가장 완전했다. 루시를 통해 인류학자들은 인류가 침팬지와 갈라진 이후 가장 처음 나타난 사람을 사람답게 하는 특징이 두발걷기임을 알게 됐다. 루시는 우리의 두뇌 용량의 3분의 1 정도밖에 되지 않는 작은 두뇌를 가졌으나 더는 나무 위에서 생활하지 않고 땅에서 두 발로 걷는 존재였다.
문제는 사람과 침팬지가 갈라진 600만 년 전부터 루시가 살던 320만 년 전 사이에 어떻게 인류 진화가 이뤄졌는지에 대한 해답을 주는 자료가 전무했다는 점이다. 이 공백을 채워준 화석이 아르디였다. 아르디는 루시와 달리 두 발 걷기를 하긴 했으나 동시에 나무 위에서 많은 시간을 보낸 것으로 보인다. 수백만 년 동안 진행된 인류 진화를 제대로 복원해 내기에는 화석의 수가 너무 적다. 하지만 우리가 어디서 왔는지 알고자 하는 호기심을 바탕으로 아르디 연구팀이 보여준 끈기 있는 발굴과 연구를 계속하면 언젠가는 아르디와 같은 화석이 수백만 년의 침묵을 깨고 우리 앞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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