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는 내년에 전 세계 사업장을 합쳐 8조5000억 원 이상의 투자를 계획하고 있다. 메모리 반도체 분야에 5조5000억 원 이상, 액정표시장치(LCD)에 3조 원 규모다. 2005∼2008년 연평균 9조5000억 원(본사 기준)에는 못 미치지만 올해 세계 사업장 연결기준 7조 원(상반기 1조5300억 원, 하반기 5조5000억 원)보다는 많다. 올 하반기 이후 ‘선도기업’의 투자 회복세가 두드러진다.
삼성전자는 3분기(7∼9월)에 사상 최고 실적을 올리면서 사상 처음으로 올해 매출 100조 원, 영업이익 10조 원 돌파를 바라보고 있다. 삼성전자는 이에 자만하지 않고 과감한 설비투자로 세계적 경쟁사들과의 기술격차를 유지하겠다는 전략이다. 국내 반도체업계는 취약분야인 비메모리 반도체 및 전후방 산업에 2012년까지 22조 원을 투자할 계획이다. 지난 수년간 해외 경쟁업체들과 벌인 ‘죽기 살기’식 치킨게임에서 승리하지 못했다면 쏟아 붓기 힘든 여유자금 투자다.
다른 산업분야도 투자가 더 활발해져야 한다. 불경기 때 투자를 위축시킨 불확실성의 안개가 지금은 어느 정도 걷혔다. 9월 제조업 가동률은 80.2%로 작년 6월 이후 15개월 만에 정상적인 수준인 80% 선을 회복했다. 광공업 생산은 3개월 연속, 서비스업 생산은 6개월 연속 증가했다. 설비투자도 9월엔 8월에 비해 18.8% 증가해 선제적 투자가 시작됐음을 보여준다. 불경기를 이유로 투자를 늦추는 기업은 경쟁에서 앞서나가기 어렵다.
LG경제연구원에 따르면 국내 대기업들은 외환위기 이후 자산을 늘리는 확장형 투자 대신 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연구개발(R&D) 투자에 치중했다. 이를 통해 확보된 기술적 우위를 바탕으로 시장지배력을 높이기 위한 설비투자에 좀 더 과감할 필요가 있다. 타이밍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 외국인투자가 주식투자에만 쏠리고 직접투자는 부진한 상황이어서 일자리를 창출하려면 국내 기업들의 실물투자 확대가 절실하다.
통신업체의 합병이나 사업조정 등 국내 대기업들이 자발적으로 추진한 사업재배치(rearrangement)가 거의 마무리되고 있어 내년 이후 설비투자 전망을 밝게 해준다. 금융위기 이후 진행되다 백지화됐거나 추진이 미뤄져 온 대우조선해양과 대우인터내셔널 현대건설 하이닉스 한국항공우주 등의 대형 인수합병(M&A)도 속도를 내야 한다. 대우조선의 최대 주주인 산업은행, 그리고 일부 구조조정기업의 지분을 넘겨받아 최근 출범한 한국정책금융공사가 매각 시간표를 조속히 제시해야 한다. 이들 매각 대상 기업이 실력 있는 새 주인을 빨리 만나면 우리 경제의 활력도 그만큼 커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