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운찬 국무총리는 그제 세종시 문제와 관련해 “박근혜 전 대표를 만나 정말 무엇을 생각하는지 듣고 (차후) 정리되는 제 생각을 말씀드리면 상당히 동의하지 않을까 하는 희망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세종시 문제는 정치적 신뢰 문제 이전에 막중한 국가 대사(大事)라는 데 이론이 있을 수 없다”고 강조했다.
정 총리는 박 전 대표의 ‘원안 고수’ 발언에 누구보다 당혹스러웠을 것이다. 한나라당 내에 박 전 대표를 그림자처럼 따르는 친박 의원이 50여 명에 이르는 현실을 감안한다면 박 전 대표의 마음을 돌리지 않고는 세종시 관련 법 개정이 불가능하다. 그런 점에서 정 총리의 박 전 대표 설득은 세종시 문제 해결을 위해 반드시 넘어야 할 산이다.
하지만 정 총리가 박 전 대표를 만나는 것부터 쉽지는 않을 것 같다. 박 전 대표 측은 ‘세종시 문제는 이미 국회에서 법으로 결정 난 사안이고, 박 전 대표는 이미 자신의 태도를 분명하게 밝힌 만큼 설득 운운하는 건 말장난에 불과하다’는 반응을 보인다. 이달 23일 박 전 대표는 “수없이 토의했고, 선거 때마다 수없이 많은 약속을 한 사안”이라며 “원안을 지키고, 필요하다면 플러스알파가 돼야 한다”고 말했다. 또 “정치는 신뢰인데, 신뢰가 없으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라면서 “당의 존립에 관한 문제”라고도 했다.
2005년 3월 행정중심복합도시법이 여야 합의로 국회에서 통과될 당시 그가 한나라당 대표였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이해할 수 있는 발언이다. 박 전 대표로서는 자신의 말과 행동에 책임지는 모습을 보이고, 충청 민심도 끌어안고 싶을 것이다.
문제는 ‘원안 플러스알파’가 참으로 총체적 국익에 부합할 것인지에 대한 긴 안목의 통찰과 고뇌도 필요하다는 점이다. 세종시 건설 구상이 국가 백년대계(百年大計)가 아니라 정략적 발상에서 비롯됐음은 많은 국민이 간파하고 있다. 국민과의 약속이나 정치적 신뢰가 애당초 ‘잘못 잠근 단추’ 같은 것이라면 단추를 풀고 다시 잠그는 것이 진정 국가와 국민을 위하는 길이다. 세종시 원안이 국정의 효율적 운영을 저해하고 국민의 부담을 키울 우려가 많다면 잘못 박힌 대못을 빼는 것까지가 정치의 몫이다. 후대와 통일 이후까지를 염두에 둔 대안 모색을 일언지하에 거부할 일은 아니다.
박 전 대표가 세종시 대안 추진을 실패로 끝나게 할 정치적 선택을 끝까지 밀어붙일 수는 있다. 그러나 우선은 정 총리와 만나 허심탄회하게 얘기를 나눠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