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이현두]백년대계, 백년하청?

  • 동아일보
  • 입력 2009년 11월 4일 03시 00분


따지고 보면 너무 오랫동안 유지됐다. 조변석개(朝變夕改)도 놀랍지 않은 변화무쌍한 판에서 25년을 버텼으니. 오히려 이상하다고 말하는 것이 맞다.

신종 인플루엔자 못지않게 이 땅의 학부모들을 들끓게 만들고 있는 외국어고 얘기다. 지난달 초 정치권에서 시작된 외고 논쟁이 한 달 가까이 식을 줄 모르고 있다. 이 문제와 상관없을 것 같은 이재오 국민권익위원회 위원장까지 “외고가 사교육을 받은 학생들만 가는 곳이 아니라, 가난해도 실력이 있으면 갈 수 있게 해야 한다”고 거들 정도니 무슨 말을 더 하랴.

그렇다고 외고 논란이 갑자기 하늘에서 떨어진 것은 아니다. ‘교육부는 자연계 과정, 의대준비반 등을 운영하거나 선발 및 교육과정을 설립 취지에 맞지 않게 운영하는 외고는 시정 명령을 내리고 특목고 지정 취소도 검토한다고 밝혔다.’ ‘교육부는 외국어고와 과학고를 특성화고로 전환하고 정기적인 평가를 통해 문제가 있는 학교는 특성화고 지정을 해제할 수 있도록 학교 체제를 바꾸는 방안을 적극 검토하고 있다.’ ‘서울지역 6개 외고 교장단은 토플 토익 등 공인영어시험 성적을 입학전형에 반영하지 않는 입시 개선 방안을 발표했다.’ 2년 전 이맘때 동아일보에 실린 외고 관련 기사의 일부분들이다. 날짜만 가리면 최근 기사와 구분할 수 없을 정도다.

외고를 존속시켜야 하는지 아니면 폐지해야 하는지, 충분히 혼란스러워진 이 논란에 불민한 기자까지 끼어들 필요는 없을 듯하다. 그런데 한 가지는 꼭 짚고 넘어가야겠다.

외고 논란과 관련해 현 정부의 방침이 처음 나온 것은 지난달 6일이다. 국회 교육과학기술위원회의 교육과학기술부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안병만 교과부 장관이 “앞으로 체계적으로 연구하고 검토해서 올해 내에 (외국어고의 자율형사립고 전환 여부를) 확인해 결과를 내놓도록 하겠다”고 말한 것이 처음이다. 그나마 외국어고의 문제점을 지적하며 자율형사립고로 전환할 것을 촉구하는 의원들의 집중 공세에 밀려 “외국어고가 생긴 것이 하루이틀 일이 아니므로 갑자기 자율형사립고로 바꾼다는 게 쉽지 않다. 지금 현재는 전환을 검토하고 있지 않다”는 전제를 달았다.

하지만 안 장관의 말은 한 달도 못 갔다. 청와대와 여당으로부터 질책성 촉구를 받은 교과부는 2일 “다음 달 10일까지 외고 개선안을 포함한 고등학교 체제개편 추진 계획을 발표하겠다”고 공식 선언했다. ‘검토’가 ‘개선안 발표’로 방침이 바뀌었고 시기도 20여 일 앞당겨졌다. 교과부의 발표대로라면 외고 문제가 수면 위로 올라온 지 두 달 만에 개편 방안이 확정되는 것이다. 그야말로 전광석화(電光石火)다. 그런데도 교육계나 정치권은 놀라는 기색이 아니다. 아니 오히려 더 빨리 서두르지 못하는 것이 불만인 것 같다.

하긴 올해 교과부가 추진한 학원 심야교습 금지를 포함한 사교육 대책과 대학 입학사정관제 확대를 보면 이해가 안 되는 것도 아니다. 외고 개편과 두 정책은 논의에서 시행까지 진행된 과정과 속도가 판박이다.

한두 달 만에 뚝딱거려 교육정책을 만들어 내겠다는 것은 정상이 아니다. 우리 아이들의 미래와 그들이 살아갈 사회를 내다보고 성찰해본 흔적조차 찾기 힘들다. 그렇지 않다면 이런 객기는 부리지 못했을 것이다. 아니, ‘지식 기반’ 사회를 살아가야 할 우리 아이들에게 여전히 ‘지식 암기’ 교육을 시키는 교육 당국에 백년대계를 바랐던 기자가 순진했나 보다.

이현두 교육복지부 차장 ruch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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