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이 깊어가고 있다. 가을은 인생의 어느 계절일까. 오래전 발달심리학자 대니얼 레빈슨은 ‘인생의 사계절’을 언급하면서 중년기를 가을에 비유하였다. 중년기는 젊지도 않지만 그렇다고 아직 늙은 시기도 분명 아니다. 자신을 젊다고 생각하는 것은 당연히 정신 건강에 좋다. 하지만 현실을 너무 외면하고 ‘환상’에만 사로잡혀 있는 것도 정상적으로 나이 들기를 방해할 수 있다. 그렇다고 젊음은 돌아오지 않는다고 침울하게 지낼 수도 없다. 대학가 주변에서 대학생을 볼 때, 또는 브라운관 속 생기 넘치는 젊은 연예인을 볼 때 중년들은 마음속에 잠자고 있던 열정과 삶의 에너지를 분출하기도 한다. 반면 거울 속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면서 나이 드는 현실을 수용하곤 한다. 중년은 어느 쪽에 장단을 맞추고 살아가야 할지를 고민하는 시기이다.
레빈슨에 따르면 아동과 청소년기는 봄, 성인기는 여름, 중년기는 가을, 그리고 노년기는 겨울을 나타낸다. 또한 계절이 바뀔 때마다 환절기가 있듯이 인생에도 전환기가 있다. 성인기에서 중년기, 노년기로 전환되는 시기에 우리는 마치 환절기 감기에 걸린 것 같은, 적응을 위한 일종의 고통스러운 통과의례를 거치게 된다. 바로 ‘중년기 위기(mid-life crisis)’다.
환절기 감기같은 중년의 위기
계절이 바뀌는 환절기마다 심하게 고생하는 사람도 있고 비교적 가볍게 지나가는 사람도 있다. 인생의 전환기에 동반되는 갈등 역시 개인차가 있겠지만 80% 이상이 중년기 위기를 겪는다. 이 시기 중년들은 청소년기 때 ‘내가 누구이고 어떻게 무엇을 하면서 살아야 할지’ 안정된 실체를 찾으려고 할 때의 고민과 비슷한 경험을 한다. 중년기 ‘자아정체감(ego-identity)’의 혼란이라 할 수 있다. 정신없이 일하다가, 나 자신을 돌보기보다는 가정을 위해 희생하면서 살아오던 어느 날 인생의 한 길목에서, 문득 내가 무얼 위해 이렇게 사는 것인가, 이제까지 내 삶은 어떤 의미를 가졌던가,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옳은가와 같은 고민에 마주치게 된다. 물론 사춘기의 방황과는 다르지만 내부로부터 쏟아지는 물음에 답하고자 노력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저항하고 반항하고 싶음을 느낀다. 그동안 성공을 향한 사다리를 정신없이 오르느라 미처 돌아보지 못한 과거의 ‘나’와 ‘나의 삶’에 대해 보상을 찾으려 한다. 이러한 과정은 중년의 불안한 방황을 시작하게 할 수도 있고, 한편으론 삶의 의미를 다시 찾고 도약할 수 있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
사실 중년기 위기가 정확히 몇 세에 오는지, 얼마나 심각한지 규정하는 것은 어렵다. 개인차가 크기 때문이다. 특히 지구상 모든 척추동물에게만 존재하는 노쇠현상에 대해 연구한 생물학자 조지 파커 비더의 설명은 흥미롭다. 진화론적 관점에서 보면 원시사회에선 중년기란 존재하지 않았다. 원시사회의 인간은 18세 전후로 신체 성장이 멈추고 자식을 두게 된다. 이후 자식을 양육하기 위해 수렵이나 채집 활동에 집중한다. 그러다 30세 후반, 40세경이 되면 자식이 성장해 스스로 삶을 꾸려가게 되면서 동시에 부모의 존재가치는 없어지게 된다. 바로 이 시기에 인간은 생물학적으로 그리고 심리적으로 효율성이 떨어지면서 결국 사망에 이르는 것이다. 따라서 당시엔 현대인과 같은 중년기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았다. 이 나이를 넘어서까지 개인의 인생을 지속해가는 것에 가치를 두게 된 것은 언어가 생성되고, 좀 더 복잡한 문화형태가 출현한, 인류 역사상 비교적 최근의 일이다. 사실 수명이 너무나 연장된 현대사회에서 40세 전후가 중년기라고 정확히 말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그 오래전 원시시대 때 죽음에 직면했던 경험이 무의식적으로 축적되어 그 나이가 되면, 즉 중년기가 되면 무의식적 불안으로 인한 흔들림과 방황이 생긴다는 것이다.
한겨울 준비하는 ‘숯’이 돼야
모든 사람은 중년기를 거친다. 그 기간을 어떻게 보낼 것인지는 순전히 개인의 몫이다. 지나간 젊음을 아쉬워하며 방황할 것인지, 새로운 삶의 전환기로 받아들일 것인지는 개인의 선택에 달려 있다. 중요한 것은 균형 맞추기이다. 중년기는 한여름의 뜨거움과 겨울의 냉랭함 사이의 균형, 즉 젊음과 늙음의 균형을 맞추는 적응의 시기이다. 순식간에 활활 타올라서 금방 재만 남아버리는 불이 아니라 겨울 내내 따뜻하게 해 줄, 쉽게 꺼지지 않는 ‘숯’이어야 한다. 공자는 마흔을 어떤 유혹에도 흔들림이 없다는 불혹(不惑), 쉰 살을 천명을 알게 된다는 지천명(知天命)이라 하였다. 젊음과 늙어감의 혼란 속에서도 미혹되지 않고 겨울을 준비하는 더욱 열정적인 완숙하고 절제된 젊음. 이 가을, 중년의 새로운 젊음을 찾을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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