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양종구]뉴욕마라톤 명품으로 만든 ‘시민의 힘’

  • 동아일보
  • 입력 2009년 11월 4일 03시 00분


“여기 물 드세요.” 1일(현지 시간) 열린 2009 뉴욕 마라톤. 코스 곳곳에서 어린이들이 고사리 손으로 참가자들에게 물컵을 건네고 있었다. 인간 한계에 도전하는 참가자들을 바로 옆에서 지켜보고 도움까지 주는 생생한 교육 현장이었다.

뉴욕 마라톤은 세계 4대 마라톤(보스턴, 뉴욕, 런던, 로테르담) 중 시민 협조가 가장 잘되는 대회로 유명하다. 이날 자원봉사자만 2만여 명. 마라톤 참가자 4만여 명의 절반이나 되는 사람이 성공적인 대회를 위한 스태프로 함께 뛴 셈이다.

그뿐만이 아니다. 스태턴 섬의 베라차노 다리를 출발해 5개 구를 돌아 맨해튼 센트럴파크로 이어지는 42.195km 코스 도로변에는 시민들이 빼곡히 들어차 세계 국기를 흔들며 “힘내라”고 외쳤다. 열광적인 길거리 응원을 펼친 시민은 자그마치 400여만 명. 1897년 시작돼 가장 오랜 전통을 자랑하는 보스턴 마라톤 응원 인원인 150만 명의 두 배가 훨씬 넘는다.

뉴욕 마라톤은 1970년 뉴욕 로드러너스클럽이 127명에게 1달러의 참가비를 받고 센트럴파크를 네 바퀴 돈 게 시작이었다. 1980년대 초반 조깅이 유행하면서 대회 규모는 커졌고 1990년대 들어서는 추첨으로 참가자를 정할 정도로 성황을 이루게 됐다.

하지만 우여곡절도 많았다. 1976년 최초로 뉴욕 5개 구를 도는 코스로 바뀌었을 때 시민들의 반응은 냉담했다. 교통 체증이 심한데 굳이 대회를 개최해야 하느냐는 불평이 터져 나왔다. 항의의 표시로 차를 몰고 코스로 돌진하는 시민도 있었다.

그러나 뉴욕으로 날아오는 해외 참가자가 급증하면서 상황은 바뀌었다. 뉴욕 마라톤의 경제적 효과는 2억 달러(약 2364억 원)로 추산된다. 해외 참가자 2만여 명이 뿌리고 가는 돈과 스폰서 수입 등을 감안한 수치다. 이렇다 보니 시민들은 어느 순간 뉴욕 마라톤의 적극 지지자로 바뀌었다. 자연스럽게 대회일인 11월 첫째 일요일은 차 없는 날이 됐다. 교통 통제에 애를 먹는 국내 대회와는 다른 대목이다. 90세 이상까지 남녀 각 11개 연령군이 참가해 기록에 관계없이 완주에 의의를 두는 뉴욕 마라톤이 명품 마라톤으로 자리매김한 이유를 알 수 있었다.

푸르메재단 홍보대사인 이지선 씨는 7시간 22분 만에 풀코스 완주의 꿈을 이뤘다. 뉴욕 마라톤이 5시간이 넘으면 교통 통제를 해제하는 대회였다면 전신화상으로 피부호흡이 곤란한 이 씨는 출전할 엄두조차 내지 못했을 것이다. 뉴욕 마라톤은 성별과 나이, 장애를 모두 포용하는 지구촌 축제의 장이었다.

―뉴욕에서

양종구 스포츠레저부 yjong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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