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 인플루엔자로 인해 헌혈자(獻血者)가 급감하면서 혈액 재고가 바닥을 드러내고 있다. 대한적십자사에 따르면 신종 플루가 맹위를 떨친 10월 한 달간 헌혈자 수는 올해 1월부터 9월까지의 월평균에 비해 12% 감소했다. 9월까지만 해도 평균 7일 분량이었던 혈액 재고가 현재는 이틀 분량에도 미치지 못한다. 병원의 혈액 부족에 따라 분초를 다투는 수술에 차질이 생기고 있다.
헌혈 감소는 전체 헌혈의 35%를 차지하는 군부대와 학교의 단체헌혈이 줄줄이 취소됐기 때문이다. 개학한 8월부터 최근까지 단체헌혈을 예약했다가 연기 또는 취소한 단체는 206곳, 인원은 2만5520명에 이른다. 헌혈 과정에서 신종 플루에 감염될지 모른다는 우려와, 사람이 많이 모이는 장소를 피하려는 심리가 크게 작용했다. 근거 없는 과잉 대응이다. 신종 플루는 피를 통해 감염되지 않는다. 사람이 몰리는 단체헌혈에서도 위생 관리 수칙을 철저히 지키면 예방이 가능하다.
신종 플루가 등장했을 때 국내에선 ‘돼지독감(SI·Swine Influenza)’이라는 말에 놀라 돼지고기를 먹지 않는 사람이 많았다. 돼지고기와 돼지독감은 직접 관련성이 없다는 전문가 설명을 믿지 않았다. 돼지고기 기피 현상은 정부가 명칭을 ‘신종 인플루엔자’로 바꾸면서 줄었다. 미국과 유럽은 신종 플루를 여전히 SI라고 부르고 있지만 돼지고기 기피 현상은 없다. 조류인플루엔자가 유행하면 닭고기를 안 먹는 것도 다른 나라에선 찾아볼 수 없는 일이다. 미국에서 광우병 소가 과거에 두세 마리 있었다고 해서 미국산 쇠고기가 위험한 것도 아니다. 지레 놀라지 말고 질병에는 과학적 사고로 대처해야 한다.
헌혈은 남의 생명을 구하는 고귀한 봉사다. 지금도 병상의 환자들은 혈액 부족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의료전문가들은 신종 플루보다 혈액 부족으로 인한 피해를 더 우려하고 있다. 신종 플루 때문에 헌혈을 중단하는 것은 과학적 사고방식이 아니다. 전부터 혈액 감소가 예상됐는데도 뒤늦게 혈액수급 비상대책을 내놓는 정부도 안이하다.
정부는 어제 신종 플루 전염병 위기단계를 ‘경계’에서 ‘심각’으로 격상하면서 총력 대응에 나섰다. 예방접종 기간을 앞당기고 타미플루보다 효과가 높은 항바이러스 주사제 사용도 허용했다. 날씨가 추워짐에 따라 신종 플루 대비 태세를 더 강화해야 하지만 지나친 공포감은 득보다 실이 크다. 신종 플루를 지혜롭게 이겨내려면 우리 모두에게 사회 전체를 배려하는 마음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