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테이션/동아논평] 대통령의 국회 기피

  • 동아일보
  • 입력 2009년 11월 4일 16시 26분





그제 국회 본회의장에서는 정운찬 국무총리의 시정연설 대독을 중단시키려는 야당 의원들과 정 총리를 보호하려는 여당 의원들이 연단 주변에서 뒤엉키면서 한동안 난장판이 연출됐습니다. 주먹질만 없었지 이전에 보던 폭력 국회의 모습과 흡사했습니다.
이유를 막론하고, 이 대목에서 궁금한 점은 이명박 대통령이 직접 연단에 섰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것입니다. 그래도 똑같은 일이 벌어졌을까요. 혹시 이 대통령은 이런 사태를 우려해 총리를 대신 보낸 것은 아닐까요.
이 대통령은 작년엔 경제위기 상황 속에서 국회의 협조를 당부하기 위해 직접 예산안 시정연설을 했습니다. 그러나 올해는 김형오 국회의장의 부탁까지 있었지만 가지 않았습니다. 취임 첫 해에는 대통령이 직접 하고, 그 이후엔 총리에게 대독을 시키는 게 지금까지의 관례였던 점을 감안한다면 잘못은 아닙니다. 그러나 이 대통령마저 꼭 그런 관례를 따를 필요는 없었다고 봅니다.
비 단 예산안 시정연설이 아니더라도 우리의 대통령들은 국회에서 연설하는 걸 기피하는 경향이 강했습니다. 통상 재임 중 10번 이상의 기회가 있지만 서 너 번 한 게 보통입니다. 의회주의자를 자처한 김대중 전 대통령은 아이러니컬하게도 고작 한번이었습니다. 이명박 대통령은 작년에만 두 번 했습니다.
국회의장이 자신보다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고 있는 가운데 연설한다는 게 국가원수로서 자존심이 상할 수도 있습니다. 야당 의원들의 야유나 소란이 걱정되기도 할 것입니다. 그러나 국정을 책임 진 대통령이라면 매사를 좀더 넓은 시각으로 바라볼 필요가 있습니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아무리 대통령의 권한이 막강하더라도 국회의 협조 없이는 아무 일도 할 수 없습니다. 설사 비위가 상하고 체면이 깎이는 일을 당하더라도 대통령이 진심으로 국회에 도움을 구하는 모습을 보인다면 잃는 것보다는 얻는 것이 훨씬 많을 것입니다. 국회뿐만 아니라 국민의 마음까지도 움직일 수 있습니다.
이런 좋은 기회를 왜 마다하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입니다. 국회의원들도 정치적 차이를 떠나 대통령에 대한 기본적인 예의는 지켜야 합니다. 앞으로 대통령이 자주 국회 단상에 서고, 국회의원들이 예의를 다해 경청하는 모습을 볼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동아논평이었습니다.
이진녕 논설위원 jinny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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