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인준 칼럼]‘우·국·수’를 아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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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09년 11월 4일 20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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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중하순, 평소 존경하던 분과 지인 30여 명에게 ‘바람직한 국회의원상(像)’에 관해 몇 가지 질문을 보내고 답을 들었다. 이들의 의견이 평균 민의(民意)라고 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사심(私心)이 적고 양식(良識)있는 분들의 생각이 궁금했다.

좋은 의원님, 싫은 금배지

‘박수쳐주고 싶은 의원’으로 국회 지식경제위원회 위원장인 민주당 소속 정장선 의원을 꼽은 답변자가 꽤 많았다. 요약하자면 ‘건설적 토론을 통해 여야의 벽을 허물고 의회 본연의 역할에 충실한, 합리적 포용적 리더십’에 대한 박수였다. 자유선진당 소속 조순형 의원은 ‘통찰력, 균형 잡힌 문제 제기, 명쾌한 시시비비(是是非非)’의 모델로 꼽혔다.

한나라당 소속 신지호 의원은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바로 세우기 위해 가장 적극적 구체적 실증적으로 노력한다’는 칭찬을 들었다. 같은 당 조전혁 의원은 ‘금배지를 달기 전의 소신을 견지하며 교육경쟁력 강화를 위해 끈질기게 문제에 도전한다’고 높은 평가를 받았다.

김효석 민주당 의원은 ‘당의 자성(自省)을 촉구하고 뉴민주당 비전을 제시했다. 정당 내부 변화를 위한 노력이 돋보였다’는 호평을 얻었다(그러나 당내 강경 좌파그룹은 이 비전을 짓밟아버렸고, 오히려 이명박 정부가 뉴민주당 비전을 연상케 하는 중도실용 정책으로 지지층을 넓혔다).

‘정말 싫은 의원’으로는 폭력 쓰는 의원들의 이름이 가장 많이 나왔다. ‘국민을 위해 얼마나 거룩한 일을 하기에 의사당에서 활극영화 같은 육박전을 벌이고 해머를 휘두르며 난동을 부리는지 묵과할 수 없다. 그런 의원들은 의사당에서 추방해야 한다’는 반응이 주류였다. 폭언이 잦은 의원들도 열거됐다. 어떤 답변자는 몇몇 싫은 의원을 ‘돈키호테형, 독불장군형’으로 분류했고, 다른 응답자는 ‘독선과 반대지상주의자’를 예시했다. 상습 가투(街鬪) 의원들에 대한 혐오감도 많이 표출됐다.

여러 의견 중에서 ‘우·국·수’라는 조어(造語)도 떠올랐다. 우리 국회를 세계에서 가장 폭력적인 야만국회로 각인시키는 데 앞장선 ‘시정잡배만도 못한’ 의원들은 ‘우리 국회의 수치’를 넘어 ‘우리 국민의 수치’이자 ‘우리 국가의 수치(우국수)’라는 것이다. ‘우생순(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은 여자 핸드볼 선수들의 자랑스럽고 가슴 찡한 도전을 상징하며 국민에게 희망을 주는 말이지만 ‘우국수’는 우리나라의 부끄러운 모습을 대표하는 말같이 들린다.

그런데 국민이 ‘우국수’ 의원들을 비난만 할 자격이 있는지 생각해봐야 한다는 지적도 있었다. 그런 국회의원을 만드는 것이 국민 아니냐는 얘기다. 지난날 걸핏하면 국회의장석에 뛰어들어 의사봉을 빼앗던 의원이 “이래야 열심히 한다고, 지역구에서 또 뽑아줍니다”라고 말했다는 일화도 소개됐다.

大道걷는 지도자감은 없는가

‘지금 의원과 옛날 의원을 비교해보라’는 질문에 ‘돈 문제는 많이 깨끗해졌다’ ‘공부하고 전문성 있는 의원이 좀 늘어났다’ 같은 긍정적 답변이 나왔다. 반면 ‘요즘은 여야 간, 심지어 파벌 간 타협 자세와 소통 능력이 너무 없다’ ‘나라를 바로 이끌어야 한다는 소명의식보다는 당파와 지역구 의원으로서의 소리(小利)에 매달려 치사한 정쟁(政爭)을 너무 한다’는 비판이 뒤따랐다.

‘선진국 의원들과 비교해보라’고 했더니 ‘그쪽이 더 논리적 합리적이고 우리는 우격다짐형이 많다’ ‘선진국 의원들의 젠틀맨십과 유머감각이 우리 의원들에게는 많이 부족하다’는 지적과 함께 ‘우리 의원들은 품격(品格)과 프로페셔널리즘은 더 높이고, 특권의식은 더 낮춰야 한다’는 주문이 이어졌다. 그제 국회 본회의장 입구에서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를 둘러싼 기자들 때문에 출입문이 막히자 뒤에서 기다리던 박희태 의원이 “나도 똑같은 박 전 대표인데 난 왜 이리 인기가 없나”라고 해 폭소가 터졌다. 국회의원들의 어록이 워낙 살벌하다 보니, 그래도 한 점 주고 싶어지는 유머다.

몇몇 응답자는 국회의원들의 포퓰리즘 행태를 우려했다. 포퓰리즘 정치는 말은 국민을 위한다지만 따져보면 공익(公益)보다 사익(私益)을 위한 것이라는 지적이다. 대중적 인기와 다음 선거에서의 표익(票益)을 노린 무책임한 주장이 많다는 얘기다. ‘전문성이 떨어지니까 부지불식간에 대중주의로 흐른다’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 등의 원칙과 근본에 대한 이해(理解)가 부족하니까 좌고우면하는 거다’ 같은 쓴소리도 나왔다.

‘국가지도자가 될 만한 의원이 보이느냐’는 물음에 한 전직 국회의장은 이렇게 답했다. “처음부터 ‘깜’이 있는 것은 아니고 사안 하나하나에 부딪쳐 해결하는 과정에서 실력이 붙는 것이다. 다만 대도(大道)를 용기 있게 말할 수 있는 의원이라야 하고, 국민의 깊숙한 마음을 읽어낼 줄 알며 이에 부응하기 위한 자기희생의 행동력이 필요하다.”

배인준 논설주간 injo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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