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자동차는 충전 인프라가 관건입니다. 한전과 양해각서(MOU) 체결하는 걸로 쉽게 해결될 문제가 아니에요.”
3일 서울 강남구 역삼동 한국과학기술회관에서 열린 ‘전기자동차 기술개발과 산업화’ 심포지엄에서 이현순 현대자동차 부회장(연구개발 총괄)은 기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전기차 시대가 금방이라도 도래할 것처럼 말하는 정부나 산업계 일각의 시각과는 사뭇 달랐다.
이 부회장은 이날 강연에서 현대차의 전기차 개발 시점에 대해 △2010년 시범운행 △2011년 시범생산 △2012년 소량 양산 △2013년 본격 양산으로 나눠 소개했다. 이는 최근 정부가 예정보다 2년 앞당겨 2011년까지 전기차 양산체계를 갖추겠다고 발표한 것과 미묘한 차이가 있는 발언이다. 최근 정부는 전기차 부품과 소재 개발에 4000억 원을 투입해 2015년까지 전기차 4대 강국에 들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하지만 자동차 전문가들은 전기차 후발국인 우리나라가 대량 양산체계를 갖추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이라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실제로 심포지엄 행사장에서 만난 이용한 KAIST 온라인전기자동차사업단 고문은 “현 기술 여건을 고려할 때 전기차가 본격적인 양산에 들어가려면 10년가량 걸릴 것으로 본다”며 “전기차 개발은 당대 최고의 자동차메이커였던 GM조차 한때 손을 들었을 정도로 만만치 않은 사업”이라고 지적했다.
GM 연구개발(R&D) 부문에서 수십 년간 근무했던 이 고문은 “전기차는 ‘충전 인프라’가 구축되지 않으면 무용지물”이라고 말했다. 강연에 나선 이 부회장 역시 “차고가 딸린 단독주택이 대부분인 미국과 달리 한국은 고층아파트가 많아 전기차 인프라 구축이 훨씬 어렵다”고 했다. 전기차 인프라의 중요한 부분인 가정용 충전시설의 설치가 용의치 않다는 얘기였다.
이처럼 현실의 벽이 높음에도 정부가 전기차 개발을 서두르는 것은 ‘저탄소 녹색성장’ 정책과 관련이 깊다. 지식경제부 관계자는 “온실가스 감축의 가시적 성과를 내려면 전체 에너지 소비량의 20%를 차지하는 수송 분야를 우선 건드릴 수밖에 없다”고 했다. 또 최근 르노그룹과 미쓰비시가 잇따라 전기차 양산계획을 내놓은 것도 자극이 됐다.
그러나 전기차에 대한 시장 수요 전망마저 기관마다 엇갈리는 상황에서 정부가 무리하게 양산을 추진하면 관련 업체에 부담을 주는 등 역효과가 생길 수도 있다. ‘급할수록 돌아가라’는 격언대로 전기차의 현실을 직시하고 실현 가능한 부분부터 차근차근 챙기는 자세가 필요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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