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양수길]녹색성장을 위한 고통분담

  • 동아일보
  • 입력 2009년 11월 9일 03시 00분


정부가 2020년까지의 온실가스 배출량 감축 목표치로 2005년 배출량 대비 ―4% 안을 선택해 다음 달 코펜하겐 당사국총회 최종협상에 앞서 이달 중 일방적으로 선언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그간 검토해 온 3가지 대안 중 가장 의욕적인 수치다.

산업계 당장의 어려움 견뎌내자

그러나 산업계는 감축 목표를 최대한 소극적으로 잡고, 발표도 코펜하겐 협상의 추이를 봐서 하자는 쪽이다. 정부는 빠른 시일 내에 객관적 분석에 근거한 충분하고 솔직한 토론과 구체성 있는 감축 방법을 산업계와 협의해 동의와 지지를 구해야 한다. 산업계의 이해와 동참 없이는 어떠한 목표도 효과적으로 혹은 지속적으로 실천하기 어렵다.

산업계는 정부가 감축 목표를 의욕적으로 잡을수록 감축 비용이 커지고, 자동차 조선 철강 석유화학 등 화석연료 의존도가 높은 에너지 다소비 업종의 국제경쟁력이 약화될 수 있다고 우려한다.

그러나 화석연료에 의존하는 기존의 고(高)탄소 갈색성장 패러다임이 급속히 붕괴되고 있어 저탄소 녹색성장이라는 새로운 패러다임으로의 전환이 불가피해졌다. 1970년대 제1차 석유위기 이후 탈(脫)석유를 꾸준히 추진해 온 일본과 유럽 등 선진공업국들은 이미 녹색성장을 경쟁적으로 추진해 왔다. 이들은 교토의정서상 2008∼2012년 온실가스 배출량 감축을 약속하고 이를 이행해 이런 노력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코펜하겐에서 혹은 그 후 2013∼2020년의 새로운 감축협약을 타결하면 선진공업국을 중심으로 녹색성장 경쟁은 심화될 것이다. 한국이 적극적 감축 목표치를 채택하는 것은 후발자로서 선진국을 따라잡겠다는 정책의지의 표현이다. 저탄소화(化) 기술과 제품 및 서비스에 투자하고자 하는 기업인들은 정책적 제도적 환경의 불확실성을 애로요인으로 지적한다. 감축 목표 설정은 저탄소화 정책의지를 분명히 해 녹색성장으로의 전환을 촉진하고, 탄소시장의 형성을 촉진해 이런 불확실성을 제거하기 위한 ‘첫 단추’다.

한국 경제는 가장 의욕적인 제3안을 큰 무리 없이 감내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제3안은 유럽연합(EU)이 개발도상국에 요구하는 감축 가운데 가장 크다. 기술 수준이 이미 선진공업국권에 진입한 한국의 온실가스 감축 능력은 개도국을 능가할 것이다. 이 안의 실현을 위해서는 차세대 그린카를 보급하고 최첨단 고효율제품을 확대 보급해야 한다. 뒤집어 말하면 그린카와 최첨단 고효율제품을 개발 보급하려면 제3안 정도의 감축 목표가 필요하다. 감축량의 배정은 업종별 여건에 따라 차별화된 방법으로 이루어질 것이다. 예컨대 화석연료 다소비 업종에 대해 상당한 우려가 있지만 이들 업종은 에너지 사용 효율이 이미 높은 만큼 적은 감축량이 배정될 수 있다.

장기적으로 엄청난 이익

국가적 온실가스 감축은 산업계만이 하는 것이 아니다. 효율을 높이기 위해서는 가정과 건물, 수송 등 모든 부문이 과도기적 어려움을 분담해야 한다. 녹색성장 후발국으로서 이런 과정은 당장 힘들 수 있다. 하지만 이런 과정 없이는 녹색성장의 과실은 요원하다. 녹색성장기획단에 따르면 감축에 따른 조정비용은 국내총생산(GDP)을 0.5% 감소시키지만 장기적인 녹색성장 효과는 GDP를 4% 높일 것으로 추정된다. 고용 창출, 생활의 질 개선과 같은 GDP 이외의 혜택도 있다.

코펜하겐 협상은 순조롭지 못할 것으로 보인다. 코펜하겐 회의에 앞서 한국이 과감하다고 평가받는 목표를 선언한다면 현재의 교착을 타개하기 위한 분위기 조성에 기여할 것이다. 또 새로운 주요 20개국(G20) 체제에서 한국이 중심국의 하나로 위상을 확보하는 데 도움이 된다. 이에 따르는 경제적 외교적 이득은 광범위하고 지속적이다.

양수길 국가경영전략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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