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정성희]교황청과 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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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09년 11월 1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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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넓은 우주에 우리만 존재한다면 그것은 엄청난 공간의 낭비다.” 소음과 불빛이 없는 한적한 곳에서 밤하늘을 바라보노라면 세계적 천문학자 칼 세이건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우주 어딘가에 우리와 같은 지적 생명체가 존재하는 걸까. CNN이 2000년 실시한 여론조사에선 응답자의 82%가 ‘그렇다’고 말했다. 외계인과 접촉하고 싶다는 열망은 수많은 저술과 영화로 재현되었으며 외계지적생명체탐색(SETI·Search for Extra-Terrestrial Intelligence) 프로그램을 출범시켰다.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인 엔리코 페르미도 이런 생각에 동의했다. 동료학자들과 이 문제를 토론하던 그는 느닷없이 질문을 던졌다. “외계인이 존재한다면 모두 어디 있는 거지?” 외계인이 있다면 왜 그들을 만날 수도, 흔적을 찾을 수도 없는가에 대한 근본적 물음은 ‘페르미 역설’로 불린다. 우주에서 날아오는 전파의 규칙성을 토대로 외계인을 찾으려는 SETI의 시도는 아직까지 성공하지 못하고 있다.

▷과학의 합리적 사고로 종교를 공격해온 리처드 도킨스 옥스퍼드대 교수는 저서 ‘만들어진 신’에서 외계에 엄청나게 발전한 문명이 있다면 인간은 신과 외계인을 구분하지 못할 것이라고 지적해 논란을 불렀다. 그런데 로마교황청이 최근 ‘외계 생명체 존재 여부’를 주제로 개최한 학술대회에서 “외계에 지능을 갖춘 존재가 있다면 그도 역시 신(神)의 창조물”이라고 말해 관심을 끈다. 태양이 우주의 중심이라고 주장했다는 이유로 갈릴레오 갈릴레이를 종교재판에 회부한 지 400년 만의 크나큰 인식의 변화다.

▷종교와 과학의 관계를 쉽게 정의내리긴 어렵다. 다만 재미있는 사실은 우주탄생의 정설로 여겨지는 빅뱅이론의 창시자도 가톨릭 신부였다는 점이다. MIT대 물리학 박사인 조르주 르메르트 신부는 “우주가 팽창한다면 원시우주는 지금보다 작았을 것이고 궁극적으로 하나의 점에서 출발했을 것”이라며 빅뱅이론을 제시했다. 교황청 천문대장인 호세 가브리엘 후네스 신부의 ‘외계인 인정’ 발언도 종교가 현대과학의 성과를 수용하려는 연장선상에서 나온 것이다. 외계인 인정이 결코 창조론 부인이 아니다. 신은 여전히 믿음의 영역이고 외계인도 아직까진 그렇다.

정성희 논설위원 shch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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