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윤양섭]美건보개혁법안 관전기

  • 동아일보
  • 입력 2009년 11월 13일 03시 00분


꼭 일주일 전 금요일 제이슨 알트마이어 미국 민주당 의원은 뜻밖의 전화를 받았다. 같은 당의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었다. “내일 건강보험개혁법안 투표는 역사적인 것인데, 지금까지의 노력이 헛되게 해서는 안 된다”라는 간곡한 호소였다. 이어 백악관 비서실장과 보건장관, 교육장관에게서도 전화가 왔다. 주문은 한결 같았다. 이처럼 법안에 미온적인 민주당 의원들은 물론이고 일부 공화당 의원에게도 대통령이 다이얼을 돌렸다.

미국의 건보개혁은 해묵은, 그러나 어려운 과제였다. 초일류국가를 자부하는 미국으로서는 그냥 둘 수 없는 치부이기도 했다. 국민 모두가 건보에 가입해 있는 우리와는 달리 미국에선 돈 없는 4500만 명 이상이 건강보험 사각지대에 방치돼 있었다. 이들은 응급실을 찾거나 간단한 수술에도 수백만 원을 내야 하는 제도 탓에 병원 갈 엄두를 내지 못했다. 이런 불합리한 점을 고치자는 명분 있는 일이었지만 현실은 간단치 않았다.

실제 1930년대 대공황 당시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이 전 국민 건보를 도입하려다 실패했고, 빌 클린턴 대통령도 성공하지 못했다. 사회 여러 계층간 이해도 다르고, 심지어 세대간 갈등 양상까지 얽히고설켜 이해조정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중산층은 세금을 우려하고, 은퇴자들은 의료혜택이 줄어들까 불안해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동네 타운홀을 돌아다니며 건보개혁의 당위성을 설득했다. TV 회견은 물론이고 토크 쇼 출연도 마다하지 않았다. 하지만 공화당의 반격도 만만찮았다. 공화당은 지지기반인 부유층과 기업들에 부담을 떠넘겨 경제가 활력을 잃게 될 것이라고 역공을 펼쳤다. 여기에 우파성향의 폭스뉴스는 집요하게 공화당의 논리를 퍼뜨렸다. 일각에서는 오바마 대통령이 사회주의자라는 말까지 나왔다. 이런 공세가 먹힌 탓인지 오바마의 지지율은 50%를 밑돌기까지 했다.

우여곡절 끝에 거리를 떠돌던 갈라진 여론은 의사당으로 수렴됐다. 알트마이어 의원이 전화를 받은 다음 날인 7일 오전, 워싱턴 의회 의사당에는 긴장감이 돌았다. 여야가 치열하게 싸웠던 건보개혁법안의 명운을 가르는 날이었기 때문이다. 민주당은 법안 통과를 장담할 수 없었다. 민주당이 의석수로는 훨씬 앞섰지만 당내 동요세력이 적지 않았기 때문이다.

오바마 대통령은 이날 다시 의사당을 찾았고, 백악관으로 돌아와서는 TV를 통해 “국가의 미래를 위해” 통과시켜야 한다고 막판 호소했다. 여야 표 대결만 남아 있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상황이 여의치 않자 민주당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은 타협안을 내놓았다. 공화당이 원하는 낙태에 대한 정부차원의 재정지원을 금지하는 법안을 통과해 줬다. 결국 11시간 이상의 불꽃 튀는 공방과 설득, 막후 협상을 거쳐 법안은 5표 차로 통과됐다. 공화당은 실리를 챙기고 민주당은 건보개혁이라는 명분을 얻었다.

건보개혁법안 하원 통과는 옳다고 생각하는 일을 향한 지도자의 추진력과 끝없는 설득, 그리고 의사당 내에서 이뤄진 여야간 타협을 보여준 드라마였다. 언론은 오바마 대통령이 취임 10개월 만에 어려운 고비 하나를 넘겼다고 평가했다. 하지만 세상일이라는 게 알 수 없는 일이다. 국내적으로는 호평을 받는 그로서도 아프가니스탄 이란 등 외교분야에서는 죽을 쑤고 있으니….

윤양섭 국제부장 laila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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