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 9일 공영방송 KBS 2TV가 방영한 ‘미녀들의 수다’에 출연한 여대생 이모 씨의 ‘키 작은 남자는 싫어요’ 발언이 촉발한 ‘루저녀’ 사건의 전개과정은 우리 사회의 일그러진 자화상(自畵像)을 보여줬다. 이 사건은 시청률 경쟁에 매몰된 TV 방송사와 제작진, 대중매체에 나와 발언을 하면서 다른 사람에 대한 배려가 부족한 출연자, 사생활 보호의식이나 인터넷 윤리를 몰각한 누리꾼이 모두 책임을 느끼고 반성해야 할 일이다.
이 씨의 발언은 공중파 TV에서 공개적으로 하기에는 부적절한 내용이었다. 이 씨는 “키 작은 남자는 싫어요. 요즘 키가 경쟁력인 시대에 키 작은 남자는 ‘루저(loser·패배자)’라고 생각합니다. 남자 키는 180(cm)은 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라고 말했다. 교육을 받을 만큼 받은 대학생이 키 작은 남성들을 루저라고 비하한 것은 스스로 사과했듯이 “경솔하고 신중치 못한 발언”이었다. 방송작가가 써 준 대본대로 말했다지만 이 씨는 책임을 면하기 어렵다. 키 작은 사람들이 흡사 큰 결격자나 된 것 같은 불쾌감을 느꼈을 것이다.
그렇다고 누리꾼들이 이 씨의 인터넷 ID나 전화번호, 미니홈피 주소, 고등학교 졸업사진 등 개인 신상 정보들을 찾아내 인터넷에 무차별적으로 공개한 것도 잘못된 행동이다. 문제의 발언을 논리적으로 반박하는 정도로 충분하다. 이 씨는 공인(公人)이 아니고 범죄를 저지른 것도 아니다. 말실수를 했을 뿐인데 무차별적인 사생활 침해나 지나친 모욕은 범죄가 될 수도 있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녹화 방송이었는데도 부적절한 발언을 걸러내기는커녕 ‘키 작은 남자는 loser’라는 자막까지 덧붙여 방영한 제작진과 방송사도 책임을 통감하고 사과하는 것이 옳다. TV만 틀면 나오는 예능 프로그램들은 출연자들의 천박하고 자극적인 발언과 연예인들의 허접한 사생활 폭로 경연장으로 전락했다. 최근 7년 만에 방송에 복귀한 개그우먼이 “부모 입장에서 TV를 보면 요즘 방송은 미친 것 같다”고 비판했을 정도다.
더구나 생방송도 아닌 녹화방송이었는데 ‘루저’ 발언을 걸러내지 못한 시스템도 문제다. 품격 있는 사회를 만드는 데 앞장서야 할 방송이 시청률 경쟁에 눈이 멀어 타인에 대한 배려도 없고, 사회의 건전한 기풍을 해치는 막말을 쏟아내기에 바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