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은 나흘 전의 서해교전과 관련한 대남(對南) 통지문을 통해 “오직 우리가 설정한 해상 군사분계선만 있다”고 어제 억지성 선언을 했다. 1953년 휴전 당시 유엔군사령관이 설정한 남북 해상경계선인 북방한계선(NLL)을 인정하지 않겠다는 뜻이다. 북한 관영 조선중앙통신은 “지금 이 시각부터 그것을 지키기 위한 우리의 무자비한 군사적 조치가 취해질 것”이라고 보복 도발을 암시했다. 남북 장성급 군사회담 북측 단장 명의로 된 이 통지문은 “위임에 따른 것”이라고 밝혀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지시나 승인에 의한 것임을 보여준다.
NLL을 인정하지 않겠다는 북의 협박은 1973년 10, 11월 두 달간 43회에 걸쳐 NLL을 의도적으로 침범한 ‘서해사태’ 이후 간헐적으로 이어졌다. 그러다 1999년 1차 연평해전 후 새 해상경계선을 제시했다. 우리 군(軍)은 아직 북의 특이한 동향이 없어 일단 ‘수사적(修辭的) 위협’으로 보면서도 추가 도발 가능성에 대비하고 있다. 북은 어제도 서해교전 당일처럼 ‘남한 해군의 무장도발 행위’라는 비난을 되풀이해 교전의 책임을 남측에 떠넘겼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방한과 북-미 대화를 앞두고 한반도의 긴장을 높이려는 술책으로 보인다. 북은 비난 대상을 남한 정부가 아닌 ‘우익 보수 세력과 군부 호전집단’으로 한정해 남쪽의 분열을 획책하는 잔꾀를 드러냈다.
북이 주장하는 해상 군사분계선을 받아들인다면 백령도 대청도 소청도 연평도 우도 등 서해 5도(島)는 완전히 고립돼 안전을 보장받을 수 없게 된다. 우리 해군 함정은 북측 해역에 최대한 가까이 접근하려 할 것이고, 북 함정은 서해 5도 주변으로 깊숙이 내려오게 될 것이다. 함정과 항공기의 충돌 가능성이 한층 커지게 될 게 틀림없다. 정전체제의 안정을 위해서도 현재의 NLL이 유지돼야만 한다. 1953년 NLL을 설정할 때도 유엔사는 이 점을 우선적으로 고려했다.
북은 NLL 침범행위를 국제법상의 효력을 발생시키는 ‘이의 제기’라고 주장하지만 ‘침범’과 ‘국가적 의사표시’는 엄연히 다르다. 무력 도발에 국제법 효력을 부여한다면 바다는 약육강식의 정글이 돼 국제사회 질서가 붕괴될 것이다. 이런 때일수록 군은 허를 찔리지 않도록 철통같은 경계태세를 갖추고 도발에는 강력한 응징으로 예봉을 꺾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