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이만우]공정위 신뢰 걸린 ‘담합 응징’

  • 동아일보
  • 입력 2009년 11월 16일 03시 00분


사상 최대 규모인 조(兆) 단위의 과징금이 걸린 액화석유가스(LPG) 담합에 대해 공정거래위원회가 최종 결정을 머뭇거리면서 논란이 가열되고 있다. 국내에서 소비되는 LPG는 SK가스와 E1이 사우디아라비아 국영기업 아람코에서 수입해 4대 정유사와 충전소에 공급하고 있다.

LPG담합 최종결정 지연에 뒷말

LPG는 석유제품과는 달리 정제 과정이 없기 때문에 수입단가와 부대비용이 총원가를 구성하는 단순 구조로 공급가격이 엇비슷한 특징을 지닌다. 충전소마다 비슷한 판매가격이 유지돼 주목 대상인 상황에서 SK가스와 SK에너지가 처벌 수위 경감을 목적으로 2003년부터의 담합 사실을 자진신고한 것이 사태의 발단이다.

자진신고 사건이라 해당 업체가 혐의를 전면 부인할 수는 없는 상황에서 공정거래법상 매출액의 10%까지 부과할 수 있는 과징금 규모가 초미의 관심사다. LPG는 택시를 비롯한 서민용 차량에서 많이 사용하고 있는데 공급업체가 가격을 담합해 부당이득을 취했다면 그 피해가 고스란히 서민에게 돌아간다. 그러나 LPG 사용 차량이 급증하면서 충전소 확충을 위한 투자가 시급했고 업계 순이익률이 특별히 높지 않았다는 점을 감안하면 과도한 처벌의 부작용이 우려되기도 한다.

혐의를 받고 있는 6개 업체의 6년간 매출액은 24조 원에 이르고 있고 자진신고 감면 등을 감안한 과징금 최초 산정액은 1조3000억 원 수준인데 이는 매출액에서 원가와 법인세를 차감한 6년간 순이익보다 많다. 특히 과징금은 세법상 손비로 인정되지 않기 때문에 과징금을 납부해 막대한 결손을 입는 경우에도 법인세를 추가로 납부해야 한다. 더구나 소비자가 공정위의 처분을 근거로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제기할 경우 업계는 존폐의 위기에 놓일 수밖에 없다.

업체가 담합 사실을 자진신고하도록 유도한 리니언시(Leniency)는 먼저 자백하면 처벌을 감면해 주는 특혜로 담합 파기를 유도하는 ‘당근’이다. 그러나 신고 혜택이 크다 보니 담합 여부가 애매한 사건까지 우선 신고하고 보자는 보험용 리니언시까지 등장해 혼란을 주고 있다. 자진신고로 처벌 경감을 받으려면 완벽한 담합 증거를 사전에 전부 제출하도록 하고 핵심 증거를 숨겨놓고 조금씩 내밀면서 경쟁업체 견제수단으로 활용할 경우 혜택을 박탈해야 한다. 신고 받은 정보로 조사를 진행했음에도 불구하고 담합 사실을 충분히 입증하지 못하고 있는 이번 사태는 리니언시 제도의 적정성과 공정위의 신뢰성이 걸려 있다. 최근 과징금 부과에 대한 행정소송 제기가 계속 증가하고 있고 패소로 인한 환급금도 급증하고 있어 공정위의 신중한 대처가 요구된다.

부당사례 없애야 경쟁력 높아져

독과점 형태로 특정 상품을 공급할 경우 업체는 담합 유혹에 빠지기 쉽다. 담합의 손실은 소비자에게 돌아가고 부당이득은 기업 내부자가 나누어 챙긴다. 공정위는 국내가격을 국제가격과 비교해 부당한 이득이 존재하는 산업을 찾아내 경쟁촉진을 위한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수출가격보다 높은 내수가격을 유지하는 현대자동차의 경우 초과이윤을 나누고 있는 고임금 강성 노조에 들볶여 신규 생산기지를 미국과 중국으로 이전했고 그 결과 수출실적은 화려하나 신규고용은 빈약해 청년실업자의 원망을 사고 있다. 공정위는 시장지배적 사업자의 가격결정을 국제거래까지 포함시켜 조사해 부당사례를 없애야 한다.

지난 10년간 공정위는 출자총액제한과 순환출자해소 같은 정권치장용 과제에 매달리면서 경쟁촉진 과제는 등한시해 업계에 담합관행이 뿌리 깊게 잠재해 있다. 공정위는 악성 담합사례는 단호히 응징하되 국제가격 비교를 통해 산업 전반의 국제경쟁력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경쟁촉진체제를 확립해야 한다.

이만우 고려대 교수·경영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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