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찬식 칼럼]수술대에 오른 수능시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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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09년 11월 19일 19시 5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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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외국어고 입시에 이어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시험)을 손보려 하고 있다. 일 년에 한 번 치르는 수능시험을 연 2, 3회로 늘리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EBS의 수능 강의를 대폭 보강하는 방안도 추진하고 있다. EBS의 무료 강의가 인기를 끌면 수능과 관련한 사교육비를 크게 줄일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일부 보완 아닌 전체 틀 다시 짜야

1990년대와 2000년대에 학창시절을 보냈던 사람들에게 수능은 일생일대의 중요한 관문이었다. 단 한 차례 시험으로 고등학교까지 공부해온 성과가 점수화되고, 진학할 수 있는 대학의 윤곽이 결정됐다. 수능의 문턱에서 번번이 좌절한 학생이 많았지만 남보다 뒤늦은 공부로 고득점을 얻어 ‘인생 역전’이 이뤄지기도 했다.

수능은 수험생의 한숨과 눈물만큼이나 많은 논란에 휩싸였다. 1994학년도에 수능이 처음 도입됐을 당시에는 ‘사교육으로는 준비할 수 없는 시험’ ‘창의력 추리력 등 높은 수준의 사고력을 필요로 하는 시험’이라는 호평이 쏟아졌다. 이에 따라 학원의 입지가 위축되는 긍정적인 효과가 나타났다. 그러나 학원의 현미경 분석이 계속되면서 사교육으로 대비 가능한 시험으로 바뀌어 갔다. 입시에서 수능 성적을 중시하는 대학에 대한 비판도 끊이지 않았다.

그동안 대학들은 수능 성적과 대학 입학 후 학업성취도의 상관관계를 정밀 분석해 왔다. 지금까지 나온 연구 결과로는 ‘수능 성적이 높았다고 해서 대학에서도 공부를 잘하는 것은 아니다’라는 견해가 우세하다. 대학 역시 수능의 신뢰성에 의문을 갖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도 수능은 여전히 강력한 권력을 행사한다. 올해 정시모집에선 수능 성적의 영향력이 지난해보다 더 커졌다. 수능의 과도한 ‘지분’은 근본적으로 정부의 입시규제에서 비롯된 것이다. 대입 본고사는 금지되어 있고 내신 성적은 신빙성이 떨어지는 가운데 전국의 모든 수험생이 같은 날, 같은 조건 아래서 치르는 시험으로는 수능이 유일하다. 상대적으로 나은 평가기준이어서 대접을 받고 있다.

공정성 면에서도 수능은 장점이 있다. 한국 사회는 입시의 공정성을 중시한다. 기여입학제 얘기를 섣불리 꺼낼 수 없는 나라가 한국이다. 주관적 평가로 합격 여부가 가려지는 입시방식에 대해서는 거부감이 크다. 수능은 정확한 점수로 나타난다는 점에서 입시 결과에 대체로 승복하는 분위기다. 해마다 수능이 빚어내는 전국적인 몸살에는 이런 특별한 한국적 풍토가 스며들어 있다.

하지만 수능 개선은 미룰 수 없는 과제다. 사교육이 넘볼 수 없다던 수능이 사교육기관의 사정권에 들어간 지 오래다. 수능이 적절한 ‘진화’를 못했던 탓이 크다. 기왕에 수능을 수술대에 올린 이상 시험 횟수를 늘리는 문제를 논의하는 정도에 그칠 일이 아니다. 수능의 전체적인 틀을 다시 짤 필요가 있다.

최상위권의 변별력 확보 필요

수능의 한계 가운데 하나는 상위권 학생에 대한 변별력이 떨어지는 점이다. 쉽게 출제될 경우 ‘실수 안 하기’ 경쟁으로 끝나버리곤 했다. 일부에서 제기되는 수능 이원화 방안은 설득력이 있다. 수능을 공통시험과 선택시험으로 나눠, 원하는 학생들에게 난도 높은 선택시험을 볼 수 있게 하면 이런 문제점이 해소될 수 있다.

최근 정부의 교육정책은 사교육비 억제에 집중되고 있다. 수능 개선 작업에서도 이런 방향에 초점이 맞춰질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고교에서 대학에 진학하는 단계는 국가적으로 우수 인재를 골라내는 과정이다. 특히 최상위권 학생들을 치열하게 경쟁시키는 일은 모든 나라가 택하는 정책일 뿐 아니라 나라의 생존이 걸린 문제다. 정부가 수능을 개혁한다는 명목으로 이런 책무를 외면하는 결과를 내놓아서는 안 될 것이다.

홍찬식 수석논설위원 chansi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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