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권순택]역외(域外) 탈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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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09년 11월 2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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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성그룹 회장 자녀들의 미국 내 부동산 매입 의혹이 불거진 것은 ‘1인 미디어’ 안치용 씨의 주장이 발단이 됐다. 한국과 미국에서 기자생활을 한 안 씨는 미국 뉴욕에서 개인 블로그(Secret of Korea·andocu.tistory.com)를 운영하고 있다. 그는 주로 인터넷 검색과 등기소 열람으로 한국인과 재미교포의 미국 내 부동산 거래 및 보유 현황을 추적해왔다. 미국은 인터넷을 통한 부동산 정보 공개 제도가 있고 자유로운 열람이 가능해 이것이 그의 ‘추적용 무기’인 셈이다. 최근 별세한 이후락 전 중앙정보부장 가족의 미국 내 부동산 거래 내용을 공개한 사람도 안 씨다.

▷세계 각국은 지난해 미국발(發) 금융위기 이후 새로운 세원(稅源) 확보가 절실해지자 ‘역외(域外)탈세’ 추적 및 차단 활동에 더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역외 탈세란 국내에서 발생한 소득을 세금도 내지 않고 불법으로 해외에 빼돌리거나 해외에서 발생한 소득을 국내에서 신고하지 않는 것을 말한다. 미 국세청(IRS)은 10월까지 면책 프로그램을 이용해 해외 금융계좌를 신고 받았다. 그 결과 1만4700여 명이 신고했는데 이들이 계좌를 갖고 있는 나라를 다 헤아리면 70개국이 넘는다. IRS는 이 신고를 기초로 수십억 달러의 세금을 거둬들일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우리 국세청도 차장 직속으로 ‘역외 탈세 추적 전담센터’를 설치해 국제거래를 이용한 탈세를 원천적으로 차단하겠다고 18일 밝혔다. 투자를 가장한 고액 자산가들의 자금 해외 도피, 조세피난처나 금융비밀주의 국가의 비밀계좌를 이용한 재산 해외 도피 등을 철저히 감시하는 것이 목적이다. 역외 탈세 추적은 일부 국가의 금융비밀주의가 무너지고 있는 것과도 무관치 않다. 하지만 한국이 스위스 은행 비밀계좌를 들여다보긴 쉽지 않을 것이다.

▷안 씨가 찾아낸 것은 역대 한국의 권력자나 관련 인사들이 해외에 빼돌린 전체 재산 규모에 비하면 빙산의 일각 아닐까. 역외 탈세 추적 전담센터가 과거에 의혹이 난무했던 권력자들의 도피 재산이나 은행 비밀계좌 일부라도 찾아낸다면 사후적이지만 의미가 있다. ‘부패 돈맥(脈)’을 차단하는 미래적 효과도 기대된다.

권순택 논설위원 maypol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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