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7년 미국 뉴저지 주에서 초등학교 교장으로 일하던 존 클라크는 문제 학교로 소문난 공립 이스턴고교 교장을 맡아달라는 부탁을 받는다. 20년 전 자신을 쫓아낸 바로 그 학교였다. 당시 클라크는 촉망 받는 교사였지만 동료들의 ‘교원 이기주의’를 참지 못하고 마찰을 빚다 결국 전근 조치됐다.
최고 명문고였던 이스턴고교는 20년 만에 기초학력 미달 학생이 전교생의 70%나 되는 ‘3류 학교’로 변해 있었다. 고심 끝에 교장 자리를 수락한 클라크는 대대적인 개혁을 시작한다. 이번에도 문제는 매너리즘에 빠진 교사들이었다. 클라크 교장은 이렇게 소리친다. “이 학교가 문제인 이유는 학생이 아니라 바로 당신들 때문이오. 수업 준비에 시간을 들이지 않고, 방과 후면 곧바로 퇴근하는 당신들 말이오.” ‘저항 세력’을 물리친 클라크 교장은 기초학력 미달 학생 수도 크게 줄이고 학교를 바로 세운다.
영화 팬이라면 모건 프리먼이 나온 ‘고독한 스승’을 금방 떠올릴 것이다. 맞다. 실화를 가지고 만든 이 영화의 원제는 ‘Lean On me(내게 기대거라)’. 한번 스스로에게 솔직히 물어보자. 학창 시절 힘들 때마다 ‘내게 기대거라’ 하고 말씀해 준 교장 선생님이 계셨는지….
올해 서울시내 한 고교의 학부모들은 ‘교장이 너무 자주 바뀐다’며 서울시교육청을 항의 방문했다. 정년퇴임을 얼마 안 남긴 교원들이 돌아가면서 교장을 맡은 탓이다. 또 교장들이 선호 지역, 기피 지역을 정해두고 학교를 고른다는 것도 교육계에선 널리 알려진 이야기다. 교장이 되려면 1000만 원, 교감이 되려면 500만 원을 ‘사례’로 마련해야 한다는 ‘장천 감오백’이란 씁쓸한 말도 있다.
자연히 ‘내가 이 학교 최고경영자(CEO)다’라는 생각으로 학교 경영을 맡는 교장도 그리 많지 않다. 좋은 교장을 평가하는 주체도 학생이나 학부모가 아니라 교육청이다. 학교에 문제가 가득해도 교육청만 피할 수 있으면 교장은 책임을 질 필요가 없다.
교육과학기술부가 전국 모든 학교에 교장공모제를 도입한다고 한다. 이제 학교 구성원 스스로 ‘우리 학교 문제를 가장 잘 해결할 수 있는 인물’을 교장으로 모셔올 수 있는 시대가 열린 것이다. 당연한 일이지만, 막중한 권한을 맡겼으니 책임도 물을 수 있어야 한다.
이 제도가 성공하길 진심으로 바란다. 그래서 앞으로는 “힘이 들 때마다 ‘내게 기대거라’ 하고 말씀해 주신 교장 선생님 덕분에 시련과 좌절을 이겨낼 수 있었다”고 고백하는 학생과 교사가 차고 넘치기를 두 손 모아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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