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대통령이 부산 사격장 화재로 일본인 관광객들이 사망했다는 소식을 청와대 참모들이 아닌 하토야마 유키오 일본 총리에게서 처음 들었다는 사실은 충격적이다. 이 대통령은 사고 당일인 14일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참석차 싱가포르를 방문했다. 이 대통령은 이날 한일 정상회담을 갖는 자리에서 하토야마 총리로부터 일본인 관광객 피해를 전해 듣고 협조를 요청받았다. 바다 건너 일본의 총리가 알고 있는 소식을 정작 사고가 터진 나라의 대통령은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청와대 외교안보라인 관계자는 이에 대해 “이 대통령이 회담장에 들어갈 때까지 (국내로부터) 부산 참사에 대한 보고가 없었다”고 말했다. 한일 정상회담 도중에 참모들이 관련 보고를 받았으나 회담이 진행 중이어서 대통령에게 보고를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반면에 하토야마 총리는 회담 도중 메모 형태로 보고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청와대 참모진은 외교적 문제로 비화될 수도 있는 사고인 만큼 즉각 이 대통령에게 보고해 먼저 상대국 총리에게 깊은 유감과 위로를 표시하고 수습에 성의를 다할 것임을 밝히도록 보좌했어야 마땅하다.
현지 참모진이 일본보다 보고를 늦게 받았다면 그것도 문제지만, 회담 중에 보고를 받은 뒤 대통령에게 보고할 만큼 중요한 사안이 아니라고 잘못 판단했다면 더 큰 문제다. 청와대의 상황판단 능력에 중대한 허점을 드러내기 때문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2003년 미국 방문 도중 화물연대 파업을 보고받기 위해 청와대 상황실에 전화를 걸었을 때 당직 근무자가 잠을 자는 바람에 연결되지 못한 일이 있었다. 이후 청와대는 대통령이 해외순방에 나서면 대통령실장 중심으로 비상근무 체제를 유지하고 있다. 청와대는 지난해 금강산 관광객 피격 사망 사건 때 이 대통령에게 2시간 동안이나 보고가 지연돼 논란을 빚자 국가위기상황센터를 신설했다. 정작 필요할 때 제구실을 못하는 비상근무 체제와 위기관리 시스템이라면 무엇 때문에 세금을 써가며 유지한단 말인가.
정정길 대통령실장은 지난달 22일 긴급직원조회를 통해 “대통령을 보좌하는 청와대 직원들이 국민에게 믿음을 주지는 못할망정 걱정을 끼치는 일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항상 긴장감 속에서 일하라”며 기강 확립을 주문한 바 있다. 이렇게 영이 서지 않는 허술한 보고 체제로 어떻게 국정을 끌고 가겠다는 것인지 알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