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가운 소식이다. 뒷맛은 개운치 않다. 국민권익위원회가 반세기 동안 이어진 속초와 울주의 집단민원을 일거에 중재하여 해결했다는 뉴스가 나왔다. 속초에서는 비행장 주변 1422만 m²(430만 평)의 고도제한을 완화해 주민의 상업시설 건축이 가능해졌고 울주에서는 방치된 학교 터에 주민편의시설을 지을 수 있게 됐다. 주민의 불편이 줄어들게 됐다는 소식은 반갑지만 민원이 생긴 지 각각 48년과 4년이 지나서야 해결했다는 내용은 아쉽기만 하다. 정권의 실세가 위원장으로 취임하고 나서야 권익위원회의 활동이 활성화되는 양상이라면 국민의 민원해결 메커니즘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 봐야 한다.
민주화가 됐지만 풀뿌리 민초의 권익을 보장하고 고충을 해결하는 기구는 미약하기만 하다. 관청의 문턱은 아직 높고 민원서류 같은 표피적 친절을 넘어서는 구조적 권리문제의 해결은 어렵기만 하다. 대다수의 국민은 어떤 문제에 부닥칠 때마다 공적인 문제해결 기구보다 사적인 연줄에 호소하려 한다. 친척 중에는 적어도 법조인 한 명, 공무원 한 명, 의사 한 명쯤 있어야 어려움에 처했을 때 쉽사리 해결할 수 있다는 인식이 일반화됐다. 사회적으로 제공된 민원해결 메커니즘이 효능감과 공정성을 보여주지 못하기 때문이다.
광화문 근처의 관가에는 앞뒤로 빼곡히 억울한 사연을 적은 패널을 걸친 사람이 언제나 앉아있다. 오가는 공무원의 눈에라도 호소하려는 마지막 몸부림이다. 그때마다, 이 나라에는 억울한 사람이 참 많이도 살고 있구나 하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대다수는 행정관청이나 수사기관 등 국가에 의해 어려움을 당한 사람이다. 심지어는 조작된 간첩누명을 28년 만에야 벗고 통곡하는 사람도 있다. 이미 감옥살이를 하며 건강을 잃고 가족을 잃은 뒤에 말이다.
국민의 인권과 권리를 보장하고 민원이 쌓이지 않는 나라를 만들고자 하면 이제라도 공무원의 인식을 개선하고 권리구제 시스템을 보완해야 한다. 한국의 공직사회는 이제 과거의 전통적인 위민(爲民)의 이상을 버린 듯하다. 그렇다고 현대적 민주의식을 철저하게 받아들이지도 않았다. 전통적인 위민의 이상은 포기하고 현대적 민주의식은 받아들이지 않은 상태가 최악의 조합임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주민이 행정관청의 결정에 반대하는 행위 역시 집단이기주의나 님비현상으로 매도할 일이 아니다. 집단이기주의와 님비현상으로 지목받는 현장에 가보면 생각을 다시 하게 된다. 관청의 결정에 반대하는 주민 때문에 오랜 갈등 후 입지를 바꾼 혐오시설은 대개 애초부터 변경된 곳에 설치를 했어야 옳았다. 오히려 왜 처음부터 이곳을 선정하지 않고 다른 곳을 선정하여 갈등을 자초했는지 이해하기 어려운 곳이 대부분이다.
집단적으로 표출되는 이기주의와 님비현상을 칭송하고픈 생각은 없다. 그러나 주민의 권리와 이익을 존중하고 보호하는 공직자의 인식은 훨씬 개선돼야 한다. 철저하게 국민의 인권과 권리를 보호하는 대신 사회적 공공성의 영역을 국가가 앞장서 넓힘으로써 공동체의 문제들을 해결하도록 만들어야 한다.
국가가 제공하는 국민의 권리구제 및 고충처리 시스템도 보완해야 한다. 과거의 고충처리위원회 청렴위원회 행정심판위원회를 합쳐 지난해에 국민권익위원회를 출범시켰지만 대다수 국민은 기구의 존재 사실조차 모른다. 사회적 권위와 신뢰를 충분히 부여받지 못했다는 의미다. 국민권익위원회가 옴부즈맨으로서의 권위와 신뢰를 부여받도록 권능을 강화하고 부패통제의 기능을 제고해야 한다. 그래야 30억 원짜리 그림 강매, 골프장 로비, 가로등 리베이트 같이 공무원의 부패소식을 전하는 우울한 조간을 펼치지 않아도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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