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의 예산안 심의가 단 한 치도 앞으로 나가지 못하고 있다. 한나라당과 민주당이 원내대표 회담까지 했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다. 법정 처리 시한이 11일, 정기국회 폐회일이 18일 앞으로 다가왔는데도 이 모양이다. 도대체 국회는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가.
민주당은 4대강 예산, 미디어법과 세종시 문제, 대학수학능력시험 성적 공개와 외고 문제를 빌미로 예산안 심의를 보이콧하고 있다. 대통령 특보 출신의 김인규 KBS 신임 사장 후보 선임까지 문제 삼고 나섰다. 당초 예정대로라면 상임위별 예산안 심의를 끝내고 지금쯤은 예결특위를 열어야 하건만 국토해양위 문화체육관광방송통신위 교육과학기술위 등 5개 상임위는 심의 일정조차 못 잡고 있다. 예산안 심의를 볼모로 사사건건 국정의 발목을 잡고 정치투쟁을 벌이는 야당의 행태가 지겹다.
민주당은 4대강 예산에 대해 계속 자료가 부족하다고 주장한다. 고속도로나 철도 건설 같은 다른 사회간접자본(SOC) 사업의 예산안과 비교한다면 4대강 예산은 수계(水系)별 시설비와 보상비 등이 표시된 원안만으로 충분하다. 민주당이 이것으로는 심의가 불가능하다고 주장해 정부는 두 차례 추가 자료를 제공했다. 여기엔 170개 전체 공구별 소요 비용과 일부 사업 내용까지 들어 있다. 그만하면 정부로서도 나름대로 성의를 보인 것이다. 예산안 명세가 문제가 아니라 4대강 사업 자체를 저지하기 위한 정략이라는 의구심을 지울 수가 없다.
국회는 4대강 살리기와 관련해 작년 12월 4800억 원의 예산안과 올해 4월 3500억 원의 추가경정예산안 심의 때는 이번 원안 명세 수준에서 처리한 전례도 있다. 4대강 사업에 보(洑) 설치와 준설(浚渫) 같은 내용이 들어있다고 해도 기존의 유사한 사업 예산안이나 통상의 입법 과정을 감안해 다루는 게 순리일 것이다. 사업이 진행되면 내년과 후년에는 좀 더 구체적인 예산 명세가 제공될 수도 있다. 아직 설계조차 완료되지 않은 사업을 놓고 상세한 내용까지 내놓으라니, 우물에서 숭늉이 나오겠나.
한나라당도 양보할 여지가 있는 것은 양보하되 좀 더 적극적으로 대응할 필요가 있다. “국민 판단에 맡기겠다”는 식으로 방관하는 것은 집권 여당으로서 무책임하다. 예산 심의는 국회의 특권이 아니라 국민에 대한 의무라는 것을 여야 모두 명심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