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박성훈]강소국 벨기에와 한국의 생존전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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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09년 11월 24일 03시 00분


면적은 프랑스의 14분의 1, 인구는 독일의 8분의 1에 불과하면서도 교역량이 세계에서 9번째로 많은 나라, 지난해 1인당 국민소득이 4만5000달러로 세계 10위권에 위치한 나라. 바로 벨기에의 모습이다. 지난 주말 유럽연합(EU), 세계은행, 미국 중앙정보국(CIA) 등 주요 국제기구와 기관의 웹사이트를 찾아 이 나라를 다시 한 번 유심히 살펴봤다. 오래전 갖고 다니면서 항상 들춰본 세계역사책도 다시 펼쳤다. 지난 수세기 동안 벨기에가 인접국인 네덜란드와 프랑스뿐만 아니라 한때 유럽을 주름잡던 스페인과 오스트리아 등 각국으로부터 일정기간 번갈아가면서 지배를 받았다는 사실도 새삼 깨달았다.

이런 작업을 한 이유는 1주일 뒤인 12월 1일 공식적으로 발효되는 EU의 헌법 격인 리스본조약에서 규정한 바와 같이 EU 정상회의 상임의장으로 현재 벨기에의 총리직을 맡고 있는 헤르만 판롬파위를 선출하기로 27개 회원국이 만장일치로 결정했다는 소식을 접했기 때문이다.

앞에서 잠깐 살폈듯이 유럽대륙에서 면적이나 인구로 그리 내세울 점이 없는 벨기에가 EU 27개 회원국을 총괄하는 대통령 격인 EU 정상회의 상임의장을 배출한 일은 한편에서는 독일 프랑스 영국 등 강대국의 치열한 주도권 다툼 사이에서 중요한 결정을 내려야 할 때 대부분은 조그만 나라가 어부지리를 얻는 방향으로 타협하는 EU의 속성을 그대로 반영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다른 한편으로는 벨기에라는 나라가 1830년 독립국이 된 이후 취한 생존전략이 주효한 결과라는 관측도 가능하다. 강소국 전략을 취한 셈이다.

EU 첫 상임의장 배출한 저력

1950년대 초반 제2차 세계대전 이후의 유럽의 거버넌스에서 중요한 시발점이던 유럽석탄철강공동체를 결성하는 파리조약에 벨기에는 네덜란드 룩셈부르크와 함께 베네룩스라는 3국 간 관세동맹을 통해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세 나라 외에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 등 유럽 강대국이 참여하여 6개국을 회원국으로 두었던 석탄철강공동체가 현재 27개국을 회원국으로 거느린 EU의 모태가 되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 후 벨기에는 유럽통합의 정책 산실이라 할 수 있는 EU집행위원회를 수도인 브뤼셀로 유치했다. EU집행위원회는 각국에서 파견한 직원 2만여 명을 두고 있는데 브뤼셀은 외국인으로 항상 가득 차 있다. 정부 공식대표단의 일원으로, 세미나 참석차, 연구활동을 위해 브뤼셀을 지금까지 20회 정도 방문했는데 갈 때마다 도시의 국제화 수준에 놀라움을 금치 못한다. 상주하는 외국인의 비율이 30% 이상일 정도로 국제화를 가장 잘 이룬 도시, 프랑스어를 주로 사용하기는 하지만 독일어 네덜란드어도 공식언어로 사용하므로 의사소통에 전혀 문제가 없는 나라의 수도, 매일 수십 건 이상의 정책 및 학술세미나를 개최해 많은 시민이 EU 차원에서 입안하는 정책의 결정과정을 피부로 느끼는 곳이 브뤼셀이다.

EU집행위원회 직원의 보수가 매우 높아 구매력이 뛰어나므로 벨기에 경제는 그만큼 추가적인 반사이익을 얻고 있기도 하다. 이에 더해 벨기에 제2도시인 앤트워프는 유럽에서 네덜란드의 로테르담 다음으로 큰 항구도시이다. 세계 유수의 기업이 수출하는 상품 중 상당 물량이 앤트워프를 통해 유럽으로 들어온다. 유럽의 조그마한 나라인 벨기에는 정치 경제 사회 등 여러 면에서 유럽의 관문(gateway) 역할을 톡톡히 수행하는 셈이다. 말하자면 작은 목소리로 유럽대륙을 호령하는 나라다. 벨기에의 이런 역할과 위상은 앞으로 2년 반 동안 활동할 EU 정상회의 상임의장을 배출함으로써 더욱 공고해질 것으로 예상된다.

신아시아 외교 정책 활용을

강소국의 모습이야말로 한국이 지향해야 할 미래의 모습이 아닌가. 우리나라도 좁게는 중국과 일본, 넓게는 러시아와 인도를 포함하는 강대국 사이에서 국가의 백년대계를 걱정해야 하는 처지다. 지금까지 수세기 동안 여러 나라의 침략과 지배를 받으면서도 단기간을 제외하고는 독립국의 위치를 유지한다는 사실이 고무적이기는 하지만 앞으로는 강소국 전략을 더 적극적으로 구사할 필요가 있다.

우리나라는 지난 수십 년간 각고의 노력으로 1960년대 초반의 최빈개도국 처지에서 벗어나 이제는 세계 15위권의 국내총생산(GDP)과 무역규모를 자랑하는 주요국으로 발돋움했다. 지금까지 성취한 많은 경제적 성과는 우리가 아시아, 아니 더 나아가서는 세계에서 강소국으로 발돋움할 수 있는 훌륭한 환경조건을 제공한다. 최근 정부가 추진하는 ‘신아시아 외교’의 중요한 축으로 강소국 전략을 채택할 때 이런 기초여건을 좀 더 효과적으로 활용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박성훈 고려대 국제대학원 교수·한국EU학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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