겉모습으로 볼 때 서울은 나날이 아름다워진다. 낡은, 그리고 어떤 경우는 그리 낡지 않은 듯한 건물이 계속 헐려나가는 자리에 고급스러운 초현대식 구조물이 들어서고 고가와 육교를 철거하고 버스중앙차로를 만드니 도시의 격이 한층 높아지는 듯하다. 청계천 복개사업에서 시작된 도시미화 사업은 광화문에서 서울역까지 이르는 대한민국 대표거리의 조성으로 연결된 듯하고 한강변을 중심으로 사방에 공원을 조성하고 특히 자전거만 타면 위험 없이 시내 어디에나 갈 수 있게 길을 만드니 얼마 안 가 서울은 자동차가 많이 다니지 않는 쾌적한 청정도시로 변할 법도 하다. 적어도 그것이 국토해양부나 서울시 당국이 끊임없이 공사판을 벌이면서 내세우는 명분인 듯하다.
과연 그렇게 될까? 동네 뒷산까지 공원으로 조성하며 조명이 찬란한 비싼 구름다리까지 놓아주는 복지혜택까지 입는 우리 시민 대다수의 삶에 대한 만족도는 그만큼 높아지는가? 적어도 내게는 그렇게 보이지 않는다. 절대다수인 다른 시민과 마찬가지로 대중교통수단과 택시, 그리고 자가용을 때에 따라 번갈아 이용하며 서울 한복판에 사는 내 경험으로는 버스나 지하철의 불합리한 노선 구조 및 환승 체계와 교통체증에서 오는 불편과 시간 낭비는 지난 몇 년 사이 늘면 늘었지 줄지 않았으며 택시 운전사의 불만 또한 결코 나에 못지않음을 안다.
물쓰듯 돈쓰며 체증은 더 악화
지난 몇 해 사이 우리 주변에서 진행하는 도시미화 사업을 보면 누구를 위한 일이며 엄청난 예산은 어디에서 나오는가, 국가적으로 더 긴요하게 써야 할 데는 없는가 하는 의혹이 생기지 않을 수 없다. 당장의 불편이나 희생, 그에 따르는 정치적 부담이 따르더라도 앞을 길게 내다보면서 큰일을 추진해야 하는 것이 공공기관의 권리이며 의무이다. 그러나 일의 타당성과 예산배정의 우선순위와 공평성, 일 추진 방식의 효율과 경제성에 관해서는 납세의 부담을 안는 시민을 설득하고 검증을 받는 과정이 필요하다. 아니면 냉혹한 비판을 모면할 길이 없다.
예를 들어 몇 해에 걸쳐 많은 불편을 끼치며 추진한 광화문의 대한민국 대표거리 조성 사례를 보자. 디자인 면에서는 다양한 의견이 있을 수 있다고 하자. 하지만 그런 거리를 조성하기 전에 반드시 선행했어야 할 일이 대중교통 수단의 확충이었다. 차로를 줄이려면 지하철을 한강 밑으로 뚫어서라도 서울의 강남북을 바로 연결하며 대중교통만으로 대한민국 대표거리에 쉽게 접근할 교통 인프라 구축을 우선했어야 했다. 지금 현재로는 전보다 훨씬 심한 교통체증이 바로 광화문 앞에서 빚어진다. 광화문 복원이 끝나면 더 심해질 것으로 전망된다.
반포대교에 분수를 설치하며 자전거 길을 만들기 위해 잠수교의 두 차로 중 하나를 봉쇄한 일도 미관과 명분을 위해 실속을 버린 대표적 사례이다. 남겨 놓은 한 차로마저 3개나 되는 신호등 때문에 쾌속로의 기능을 잃었으며 차로를 없애는 공사에 착수한 시점이 바로 인근에 수천 가구가 입주할 대형 아파트 단지가 2개나 올라가던 때였으니 시민의 교통편의는 완전히 외면하는 냉소와 무책임이 이보다 더 클 수가 있었을까. 자전거 타기를 장려한다는 취지는 좋지만 그런 여유도 없이 생업에 매달리며 하루에 몇 번씩 다리를 건너야 하는 절대다수 시민의 불편과 시간낭비는 무시해도 되는가. 강남북을 잇는 중앙 간선로인 반포대교 지역이 지금처럼 하루에도 몇 번씩 교통지옥으로 변할 것은 불 보듯 내다볼 수 있는 일이다.
교통 흐름 원리는 망각했다는 인상을 주는 시설, 예를 들어 교차로 아무데나 설치하는 삼각주, 중앙분리대 구실도 못하면서 불빛을 받아 너울거리며 마주 달리는 운전자의 시각을 교란시켜 사고의 위험을 유발시키는 주홍막대가 여러 곳에서 늘어난다. 그래서 시민은 서울시에 돈이 넘쳐나는가 보다고 빈정거리며 공사비를 따내기 위해 일을 확대하며 혈세를 낭비한다고 정부를 지탄하고 근면하고 성실한 공직자까지 싸잡아 불신한다.
시민편익에 사업 초점 맞춰야
교통사정의 악화보다도 더 큰 문제는 손발이 따로 노는 듯한 이상한 일이 사방에서 벌어져도 제어하고 조정할 장치가 작동하지 않는 듯하다는 점이다. 경기부양은 필요하지만 낭비를 허용해도 된다는 말은 아니며 미관을 개선한다고 시민의 시간처럼 소중한 자원을 낭비하는 불편을 가중시킨다면 용납할 수 없다.
이제 우리 국민의 수준은 크게 높아졌다. 전시행정이 득표 효과를 내던 시대는 지났다. 중앙정부도 지방자치단체도 정치인도 사회통합과 시민 이익의 극대화를 위해 우선적으로 추진할 일이 무엇인가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며 문제를 체계적으로 원칙 있게 해결하는 자세를 보일 때만 유권자에게 감동을 줄 수 있음을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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