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류란 말을 처음 들었을 때 지리 시간에 배운 한류나 온류를 말할 때의 한류인 줄 알았다. 2000년대 초의 일이었다. 나만의 착각이 아니었다. 당시 아시아권 한류 열풍에 대해 가장 의아해한 사람들은 한국인이었다. 서구 대중문화를 선도적으로 모방하고 이식하려던 우리였다. 2000년의 역사를 자랑한다면서 한국인은 늘 자신의 문화에 주눅 들어 있었다. 한류에 담긴 무엇이 아시아의 대중을 사로잡았단 말인가.
세계무대서 통하기 시작한 한류
한국인은 그제야 한국문화가 무엇인가, 왜 한국문화인가라는 질문에 매달렸다. 즉, 한류는 타자로부터 시작해서 다시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의 방식으로 다가왔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정부는 문화산업 강국의 실현을 핵심 국정 과제로 내세웠다. 디지털콘텐츠 산업을 위한 지원부서를 만들고 문화콘텐츠 기업의 글로벌 진출을 촉진하는 전략 방안을 제시했다. 수많은 한류 스타가 탄생했다. 뮤지컬과 드라마가 수출되기 시작했다.
한미 합작 뮤지컬 ‘드림걸스’의 뉴욕무대 첫 공연은 이런 노력의 일환이다. 드림걸스는 미국 대중음악사라는 콘텐츠에 한국인 제작자의 기획을 결합한 결과였다. 성공이다. 놀랍고 환상적이고 대단한 무대. 그전에 ‘난타’가 있었고 ‘점프’가 있었다. 공연예술뿐 아니라 드라마 영화 음반에서도 한류는 세계무대에서 빛나고 있다.
스티븐 스필버그의 영화 한 편 수익이 울산 현대차공장의 1년 매출액보다 많다는 말을 들을 때가 있었다. 1990년대다. 따지고 보면 당연한 일일 수 있다. 한국인은 오랫동안 유교적 전통과 억압적 근대화의 역사를 살았다. 제 스스로 갖고 있던 끼를 이제야 발견한 것이다. 그것은 열정(passion)이다. 갓난아이 엉덩이의 푸른 몽고점은 우리 민족이 북방 초원에서 말을 달리던 유목민이었다는 증거이다. 사무실에 가만히 앉아 있다가 갑자기 꽹과리를 두드리고 북을 치고 싶다면 당신의 엉덩이 뒤쪽 몽고점이 뜨거워져서다. 북방 초원에서 말을 달리던 신명으로 한바탕 놀아보고 싶은 열정이 되살아난 셈이다. 월드컵 길거리 응원이 그 예고 비보이의 길거리 공연이 그 예다. 낙천성과 솔직함, 열정과 개성의 민족. 한국인은 이제 더는 은근과 끈기의 민족이 아니다.
그러나 한류를 위한 문화콘텐츠 개발, 문화콘텐츠 산업이란 단어에 나는 거부감을 느낀다. 한류나 문화를 철저하게 경제적 가치라는 전제하에서 논의하기 때문이다. 부가가치 창출이 가능해야만 문화가 되고 한류가 된다, 한국 문화콘텐츠가 세계적인 수준이 되려면 인문학에 대한 소양을 더욱 양성해야 한다고 말한다. 아시아뿐 아니라 세계문화 공동체 네트워크 형성이란 관점에서 세계 문화와 역사에 대한 이해도를 높이고 창의성과 독특한 소재 개발을 위해 끝없이 연구해야 한다.
창의적 콘텐츠는 인문학서 나와
한국이 문화콘텐츠 개발로 한류 열풍의 주자가 된다고 문화 강국인가. 한국인이 진정 문화 국민인가. 책 읽는 인구가 일본의 10분의 1도 되지 않고 출판 종수는 일본보다 더더욱 떨어지는 나라. 자기계발서와 토플 책만 불티나게 팔리는 나라가 한국이다. 문화콘텐츠 강국과 문화 국민은 전적으로 다르다.
인문학의 위기라고 말하고 경영과 인문학의 접맥을 통해 창의력을 찾겠다고 한다. 진정한 인문학의 양성은 우리 내면의 삶과 세계에 대한 순수한 열정과 애정에서 시작한다. 책을 읽고 사유하고 내면을 들여다볼 때 문화의 진면목이 보인다. 콘텐츠가 보이고 창의력이 살아날 수 있다. 산업적 가치에 기준한 인문학이 아니라 인문학 정신에 기반을 둔 문화가 콘텐츠의 창의성과 고유성을 가져온다. 문화콘텐츠 강국이기 이전에 한국인은 문화 국민이어야 한다.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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