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허엽]남한산성과 명성황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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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09년 11월 27일 03시 00분


김훈 작가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뮤지컬 ‘남한산성’을 두 번 봤다. 치욕의 역사여서 꺼렸지만 그런 역사를 어떻게 무대 예술로 표현했을까 하는 호기심이 더 컸다. 소설은 상상을 해야 하지만 무대는 역사를 모방해 눈앞의 현실로 안겨 주기 때문이다.

청 태종이 등장하는 도입부는 웅장했으나 기자의 속내는 두 번째도 편치 않았다. 그가 조선의 왕이었다면 하는 ‘애국주의’도 떠올랐다. 무대의 스타일과 멋스러운 장치에 조선의 치욕이 가려진 듯했다. 초등학생 아들은 검무를 비롯한 볼거리와 솔깃한 선율이 만든 현실에 “재미있다”고 했다. 슈퍼주니어 멤버인 예성을 더블 캐스팅해 10대 관객이 많았다.

기자에게 각인된 대목은 ‘죽어서 사느냐’ ‘살아서 죽느냐’였다. 원작이 던진 문제이지만 뮤지컬에서는 이 모순적 갈등이 비장한 노래와 함께 ‘현실’이 된다. 결사항쟁을 외치는 척화파 김상헌 오달제는 이렇게 부른다. “나는 죽어서 살겠다. 나의 피로써 내 나라가 살아서 숨쉴 것이다.”

이에 반해 ‘살아서 죽는 이’는 화친(사실상 항복)을 맺자는 주화파 최명길이다. 후대 선비들은 척화파를 절개의 상징으로 추앙하지만 최명길은 변절자로 비난한다. 하지만 최명길이 그 손가락질을 몰랐을까. 자신만 살겠다고 그랬을까. 나라가 망해가는 판에 명분보다 더 급한 일을 누군가는 챙겨야 했다.

공연을 보는 동안 사람 사는 게 어제와 오늘과 내일이 다르지 않다는 생각과 함께, 일제 강점기와 6·25전쟁을 겪은 윗세대에 얽힌 과거 논란이 오버랩됐다. 최근 나온 책 ‘작가의 탄생’(정범준 지음)에 따르면 소설가 이병주는 6·25전쟁 도중 좌우의 학살을 목도하면서 ‘조국의 부재’를 느꼈다. 그는 인민군 치하 정치보위부에 끌려갔다가 친구 덕분에 고비를 넘기고 한 달 동안 시키는 대로 연극 연습을 했다. 하지만 이 때문에 대한민국 검사의 조사를 받는다. 그는 검사에게 “정부가 국민의 생명을 보전할 의무를 포기하고 도망쳐버렸는데 살기 위해 잠시 그랬다. 내게 죄가 있다면 죽지 않고 살아 있다는 죄밖에 없다”고 항변했다. 다행히 불기소됐다. 그 항변이 먹힌 게 아니라 아버지의 구명 노력 덕분이었다. 깨진 나라에서 누가 그에게 돌을 던졌을까.

몇 년 전 뮤지컬 ‘명성황후’를 보면서도 ‘남한산성’과 비슷한 의문이 들었다. 망신스러운 역사가 무대에서 현실이 되는 순간 어떤 느낌이 올까. 명성황후의 역사는 남한산성보다 더 수치스럽다. 조선의 황후가 ‘여우 사냥’이라는 작전 아래 궁궐에 잠입한 일본 낭인들의 칼에 살해됐다. 이 비극을 담은 뮤지컬은 명성황후의 혼이 ‘조선의 백성이여 일어나라’고 노래하는 장면에서 대단원을 이룬다.

이 뮤지컬은 1995년 초연 이래 창작 뮤지컬 역사를 써 가고 있다. 뉴욕 등에서 호평 받았고 올해는 28일부터 한 달간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에서 공연한다. 12월 26일에는 1000회라는 대기록도 세운다. 그 바탕에는 치욕의 역사를 세계사적 보편성으로 극화한 윤호진 연출가의 역량이 있다. 열강의 악다구니에 무기력했던 조선의 살고자 하는 몸짓이 국경을 넘어 공감을 산 셈이다.

남한산성은 한 달 공연에 객석 점유율이 초대를 포함해 70%(3만여 명)를 웃돌았다. 첫 출발이 나쁘지 않고 ‘잘 나왔다’는 평도 듣는다. 하지만 기자는 그 형식미보다 남한산성에 갇혀 다투는 이들의 내면에 눈길이 갔다. 명분과 실리, 생과 사를 양립시킨 갈등이 현실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남한산성이 오래가려면 이 담론을 더 풍성하게, 현재화해야 할 것 같다.

허엽 문화부장 he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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