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정재호]국가경쟁력, 국가브랜드 그리고 국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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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09년 11월 27일 03시 00분


최근 들어 국가경쟁력, 나라 이미지, 국가브랜드에 대한 논의와 홍보가 넘쳐나는 듯하다. 세계화의 도전 속에서 생존과 국익 수호를 위해 ‘우물 안 개구리’를 벗어나 외향적 국제화를 모색한다는 것은 무엇보다도 반갑고 우리 모두 힘을 합쳐야 할 일임에 틀림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된 방향 설정을 위해 몇 가지 제언을 하고자 한다.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의 성원이 된 한국이 2010년 하반기 회의 개최국으로까지 선정되면서 분위기는 갈수록 들뜨고 있다. G20 회의의 한국 개최가 수천억 원 이상의 경제효과를 가져온다니 이는 분명 환영하고 기뻐해야 할 일이지만 왠지 어딘가에 걸려 쉽게 이해가 안 되는 점이 하나 있다. 우리가 G20에 들어간 것을 왜 그리 대단한 일로 간주해야만 하는가가 바로 그것이다.

경제규모 세계 15위(국내총생산 기준), 정보기술(IT) 능력 5위, 종합군사력 10위권, 한국어 영향력 9위, 외환보유액 6위의 지표를 감안한다면 한국이 G20에 들지 못하는 것이 오히려 더 놀라운 일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우리의 인구 순위 46위가 문제였다면 스페인 호주 네덜란드 및 캐나다의 진입도 문제가 될 수밖에 없다. 또 대륙별 안배(아시아에서만 5개국) 요인 때문에 힘들었다는 얘기도 결국은 우리의 국제적 영향력이 인도네시아보다도 약함을 자인하는 것일 뿐이다. 혹 G14면 또 모를까 G20에 진입한 것을 놓고 요란을 떠는 일이 세계가 바라보는 가운데 우리 자신을 지나치게 낮추는 모습이 될까 두렵다.

G-20 진입, 요란 떨 일 아닌데…

안홀트-GMI가 내놓은 국가브랜드지수(NBI)에 따르면 한국은 50개국 중 33위를 차지해 경제력 군사력 및 IT 능력에 비해 턱없이 모자란 모습을 보이고 있기에 최근 급증하는 국가경쟁력이나 국가이미지와 관련한 담론에 일단은 긍정적인 평가를 내리고 싶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 논의가 어쩌면 지나치게 경제적 상업적 가치나 함의에만 주목하는 것은 아닌지 묻고 싶다. 소위 이미지 개선을 위한 ‘독특한 판매 제안(USP·unique selling points)’ 개념에 집착하는 것만으로는 해결하기 힘든 시스템의 문제가 너무 많기 때문이다.

몇 가지 예를 한번 자세히 들여다보자. 우선 외국인에게 한국은 주로 거칠고 충동적인 나라로 비친다. 시도 때도 없이 CNN과 외신의 1면을 장식하는 우리 국회의 창피한 모습과 관련해서는 전기톱 사건을 보고 난 후 그 무엇도 이제 별반 놀랍지가 않다. 18대 국회에서의 의원발의 법안의 비율이 11대 국회와 비교해 두 배나 늘어 무려 87%에 이름에도 불구하고 우리 국회의 대외 이미지가 이렇듯 정체 내지 악화되고 있음이 그저 아쉬울 따름이다. 머리에 붉은 띠만 두르고 나오면 무조건 한국에 대한 것이라고 반응할 정도로 굳어진 우리의 이미지를 어떻게 바꿀 수 있을까? 이런 근원적 문제에 대한 개선 없이 과연 국가경쟁력, 국가브랜드를 제고할 수 있을까?

고개를 들어 조금 더 먼 곳을 한번 바라보자. 몇 년 전 우리 정부가 평화를 공식 화두로 잡으면서 내놓았던 얘기가 하나 있었다. ‘우리는 한 번도 외침(外侵)을 한 적이 없어 평화를 내세우기에 가장 적절한 나라’라는 해명에 대해 문득 들었던 생각이 있었다. 외국인도 이 말을 들으면서 과연 우리를 긍정적으로만 평가했을까 하는 의문이다. 행여라도 ‘오죽 힘이 없었으면 그랬을까’라는 생각을 하지는 않았을까? 그 당시 나왔던 얘기 중에 ‘동북아 균형자’라는 개념도 있었는데 요즘 회자되는 ‘그랜드 바겐’과 얼마간 유사한 부분이 있는 것 같다. 우리가 뭔가를 주도하고 싶어 하는 배경도 그렇지만 사전에 충분한 교감과 물밑작업이 없어서 그랬는지 두 제안 공히 관련국으로부터 그리 열렬한 호응을 받지 못한 점이 사뭇 닮아 있다.

‘우리의 모습’부터 성찰해야

특히 후자의 경우, 한국의 대통령이 공식적으로 한 언급에 대해 미국의 차관보가 나서서 “잘 알지 못한다”고 논평하는 걸 보면서 우리의 국격을 어디에서 어떻게 찾아야 할지 생각지 않을 수 없었다. 그뿐만 아니라 이에 대해 대통령이 직접 나서 “미국의 아무개가 모른다고 하면 어떠냐”라고 받아치는 모습을 보면서 고민은 더욱 깊어만 갔다. 그 발언은 오히려 우리 외교통상부 차관보나 북미국장이 해야 하지 않았을까? 더 나아가 그 차관보의 아시아 방문 일정에 한국이 포함되지 않은 걸 두고 우리 언론은 우리 대통령의 발언 때문이라고까지 보도했으니 우리나라의 격(格)은 도대체 어디에서 찾아야만 하나?

인격이 그렇듯 국격 또한 우리가 가진 평상시 모습을 반영할 뿐이다. 우리를 주시하는 세계의 관중과 그들의 눈을 의식하지 못한다면 지금의 노력도 결국은 큰 의미나 성과가 없을 것임을 주지할 필요가 있다.

정재호 서울대 교수·국제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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