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박영균]화재보험 사각지대의 고객들

  • 동아닷컴
  • 입력 2009년 11월 27일 03시 00분


관광협회중앙회는 어제부터 성금 모금을 시작했다. 14일 부산 실내사격장에서 일어난 불로 숨지거나 다친 피해자들을 도우려는 것이다. 이 불로 일본인 관광객 8명과 한국인 5명 등 13명이 숨지고 일본인 3명이 치료받고 있다. 관광업 종사자들이 피해자들의 고통을 보다 못해 모금에 나선 것이다.

부상자들의 수술이 거듭되고 치료일수가 늘면서 그 가족의 고통도 커지고 있다. 환자당 치료비가 1억 원을 넘어 병원 측은 일본영사관이나 부산시에 치료비 지급보증을 서 달라고 요구하지만 어느 곳도 선뜻 나서지 못하고 있다.

防災시스템보다 더 허술한 보상 대책

우리 관광객이 동남아 후진국에서 사고를 당했을 때처럼 일본 언론은 한국의 허술한 방재(防災) 시스템을 비판했다.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다. 그뿐만이 아니다. 이번 참사의 사후 처리 과정을 보면 피해자 보상 대책은 허술한 방재 시스템보다 더 허술하다는 느낌이 든다.

화재 원인을 규명하는 수사가 장기화되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치더라도 피해자 보상이 불확실하다는 것은 이해가 되지 않는다. 사격장 건물은 건물 전체가 탔을 때 6억 원까지 보상받을 수 있는 화재보험만 적용된다. 화재 피해자에게 보상해주는 대인보험은 들지 않았다. 피해자에게 줄 보험금이 없다면 사격장 주인이 책임져야 하지만 수술비, 치료비에다 사망자 장례비용과 위로금까지 수십억 원이 넘는 보상금은 개인이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다.

예비비를 투입하고 있는 부산시나 정부도 보상 문제에 대해선 아무 말이 없다. 딱한 노릇이다. 전례에 비추어 보면 지방자치단체가 국민의 세금으로 유족과 피해자들에게 보상할 소지가 크다. 1994년 32명이 사망한 성수대교 붕괴사건에 사망자 1인당 2억7500만 원이 지급된 것을 비롯해 1995년 502명이 사망한 삼풍백화점 붕괴 사건, 씨랜드 화재, 인천 호프집 화재 때도 보상은 항상 지방정부의 몫이었다.

지방정부가 세금으로나마 보상을 하게 되어 ‘불행 중 다행’이라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책임져야 할 장본인은 따로 있는데 대형 사고가 터질 때마다 세금으로 대신해도 좋은 것인가. 화재를 낸 사람이 피해를 본 사람에게 보상하지 않아도 된다면 화재 방지에 소홀해질 우려도 있다.

1666년 가을 영국 런던에서 닷새 동안 불이 나 런던 시내 전 가옥의 85%인 1만3000여 채가 잿더미로 변했다. 이 화재를 계기로 화재보험이 시작됐고 미국에서도 1830년대 뉴욕과 보스턴 대화재 이후 화재보험 가입자가 크게 늘었다. 화재보험은 인류가 불의 피해를 극복하기 위해 발명한 문명의 이기(利器)다.

또 세금 성금에 의존할 건가

현재 대형 판매시설이나 대형 음식점, 11층 이상의 건물, 대형 공연장 같은 곳은 화재보험에 의무적으로 가입하도록 되어 있다. 그러나 이번에 화재가 난 부산 실내사격장 같은 중소 규모의 시설은 의무 가입 대상에서 빠져 있다. 화재와 안전에 대한 대비가 상대적으로 취약한 곳이 오히려 보험에 들지 않아도 된다니 한참 잘못됐다. 실제로 음식점 숙박업소 등 자영업자와 소상공인의 절반가량이 화재보험에 가입하지 않고 있었다.

소상공인들에게 보험에 가입하라고 하면 보험료 부담을 걱정하지만 이젠 안전을 위해 그만한 정도는 지불할 때가 됐다. 고객은 가격이 비싸더라도 안전한 곳을 찾을 것이다. 적절한 보험료를 정하고 보험회사만 돈벌지 않도록 하는 일은 정부의 몫이다. 후진국에 원조를 한다고 해서 선진국인 것은 아니다. 갖출 것은 제대로 갖추어야 선진국 소리를 들을 수 있다.

박영균 논설위원 parkyk@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