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강규형]시민단체 ‘코드 지원’ 이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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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09년 12월 1일 03시 00분


다른 나라가 수백 년 또는 100여 년을 거치며 달성한 산업화와 정보화사회, 그리고 민주화를 한국은 불과 몇십 년 만에 이뤄낸 압축성장을 했다. 세상에는 이런 상태의 문턱에 다다르지 못한 저개발국가가 부지기수다. 한국의 성취가 세계사에 기록될 자랑거리임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 과정이 너무 빨리 일어났기에 생기는 부작용 또한 만만치 않다. 우리 사회가 오랫동안 잘 익힌 술이 아니라 속성으로 만든 화학주처럼 깊고 은근한 맛이 없다는 데 많은 사람이 공감할 것이다. 부작용 중 하나가 숙성(熟成)된 시민사회를 만들 시간과 여유가 없었다는 사실이다. 시민사회의 요체 중 하나인 비정부기구(NGO) 역시 미성숙 상태에서 표류하고 있다.

책임 저버리고 정치권력화


일찍이 앨빈 토플러는 인류사 권력의 이동과정을 폭력에서 부(富)로, 그리고 부에서 지식으로의 전환으로 설명했다. 그의 예언대로 최첨단 과학기술과 지식정보에 의해 세계는 재편되고 있다. 이런 경향이 좋은 쪽으로 흐르면 시민의 확대와 건전한 NGO의 성장이 촉진된다. 현재 한국에서 일어나는 현상을 보면 아쉽게도 꼭 이런 방향으로만 인류의 역사가 흐르진 않는다.

근대 자유주의사회의 기본 중 하나는 삼권분립이다. 거대해져가는 정부의 권력을 의회와 사법부가 법치(法治)주의라는 원칙을 통해 제어한다. 거기에 언론이라는 4부가 탄생했다. 3부 권력에 대한 견제에서 시작된 언론도 그 자체가 권력이 돼버렸다. 현대사회에 들어선 시민단체, 탈산업화 정보화사회에서는 좋건 싫건 인터넷 권력이라는 새로운 권력이 출현했다. 이제는 3부가 아니라 6부라 불러야 할 정도이다.

문제는 산업화 민주화사회 단계에서 일어나야 할 시민사회(Civil Society)의 성숙이 채 시작되기 전에 탈산업화 시대를 맞은 한국사회가 길을 잃고 방황한다는 사실이다. 시민사회 성숙의 견인차 역할을 해야 할 시민단체는 권력에 뒤따르는 무거운 책임과 의무는 저버리고 자신이 정치권력화하거나 정치권력의 하수인으로 전락하는 사례가 많았다. 갑자기 주어진 권력을 주체하지 못하고 일부 시민단체의 리더는 쉽게 타락했다.

전 정권과 밀착해 단물을 빨아먹던 시민단체는 과거의 권력을 되찾으려는 야망에 불타 이념적 정치결사체처럼 변했으며, 어떤 경우에는 차라리 정치정당으로 변신하는 편이 더 나을 정도로 정체성이 흔들린다. 스님이 불공보다 잿밥에 관심이 많은 경우라 하겠으니 시민단체가 성숙한 시민사회를 이끌어 가기는커녕 자진해서 정치에 종속되며 오히려 사회의 암적 존재가 됐다. 어떤 시민단체는 특정 정치세력의 뒷돈을 대는 돈주머니 역할을 한다는 흉흉한 소문도 돌고 있으니, 사실이라면 아연할 일이다.

前정권의 전철 밟지 말아야

“절대적인 권력은 절대적으로 부패한다.” 이것은 정치권력에만 해당하는 철칙이 아니다. 중우정치(衆愚政治)에 입각한 ‘대중의 반역’을 부추기는 시민단체나 인터넷 권력도 겸손함과 도덕성을 잃고 권력을 남용하며 날뛸 때, 금전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절대적으로 타락할 수밖에 없다.

NGO 활동은 정부와 독립적으로 움직일수록 건강성과 정당성을 확보할 수 있다. 코드가 맞는 단체에만 지원하는 전 정권의 이른바 ‘코드 지원’은 현 정부에서도 유념해야 할 일이다. 현 정부의 국정지표인 녹색성장과 관련된 NGO 지원이 늘어났다는 최근 보도는 이런 우려를 뒷받침한다. 며칠 전 아쉽게 세상을 떠난 김일영 성균관대 교수는, 생전에 정치권력화를 추구하는 또는 정치권력과 밀착하려는 시민단체를 신랄하게 비판했다. 김 교수의 경고가 새삼스러워진다.

강규형 명지대 기록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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