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김순덕]노 전 대통령의 유산

  • 동아닷컴
  • 입력 2009년 12월 1일 20시 00분


“(대통령 부인이 되면) 친인척 단속에 대한 기대가 제일 크리라고 생각합니다. 대통령을 정서적으로 안정시키고 건강을 챙겨주는 일을 하겠습니다.” 제16대 대통령선거 직전인 2002년 11월 30일자 동아일보에 실렸던 권양숙 여사 인터뷰의 한토막이다. 당시 인터뷰를 맡았던 필자는 1995년 골프를 시작했다는 권 여사에게 “골프가 서민적 스포츠는 아니지 않으냐”고 물어봤다. 권 여사는 또박또박 말했다. “변호사는 서민이 아니고, 우리는 서민을 대변할 뿐입니다. 우리 집 빌라가 65평입니다. 꼭 서민이라야 서민을 대변할 수 있나요?”

▷해묵은 기억이 떠오른 이유는 고 노무현 전 대통령 유족이 지난주 국세청에 제출한 상속세 신고 때문이다. 그가 남긴 재산은 봉하마을 사저 등 13억여 원이고, 사저 건축용 은행 대출 등 부채가 16억여 원이라는 것이다. 부채가 보유재산보다 많고 별다른 문제가 없다면 상속세를 내지 않아도 된다는 게 국세청 해석이다. 상속세가 문제가 아니다. “권 여사 혼자서 그 너른 뜰에서 그 많은 부채를 감당하고 있다면 누가 봐도 문제가 아니냐”고 한나라당 주성영 의원은 보도자료를 냈다.

▷반년 전 검찰은 ‘박연차 게이트’ 수사발표문에서 권 여사가 100만 달러, 딸이 40만 달러, 아들과 조카사위가 500만 달러를 박 씨에게 받은 혐의가 있다고 밝혔다. 주 의원은 “그 돈으로 집을 샀다면 집이 있을 것이고, 현금으로 보관하고 있다면 현금이 있을 것이다. 그 돈을 상속받지 않았다면 지금 누가 가지고 있는 것인가”라고 했다. 권 여사는 친인척 단속은커녕 자신과 아들딸이 당당치 못한 돈을 받았고, 결과적으로 남편을 챙기지 못하고 말았다.

▷뇌물수수 혐의로 기소돼 유죄 판결이 확정됐다면 추징이나 몰수될 수도 있는 640만 달러였다. 그러나 노 전 대통령의 자살로 수사는 ‘공소권 없음’으로 종결됐고 돈 얘기도 쑥 들어갔다. 환율 1100원으로 따져도 70여억 원이 ‘변호사 회계사 등과 협의’한 자산 명세에 포함되지 않은, 유산 아닌 유산인 셈이다. 국민에게는 세종시, 전시작전통제권 환수, 좌편향 친일규명위원회의 ‘대한민국 건국 공헌자 및 6·25 호국 공로자’ 낙인찍기 등 노 전 대통령의 유산이 대못처럼 남겨졌다.

김순덕 논설위원 yur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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