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장원재]유동성 아닌 ‘신뢰 위기’에 무너진 두바이

  • 동아일보
  • 입력 2009년 12월 2일 03시 00분


“저는 아무것도 말할 수 없습니다.”

지난달 30일 두바이의 인공 섬인 팜 주메이라 인근 나힐 본사. 홍보를 담당하는 라슐리 펄스피어 씨는 기자를 보고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정확한 부채 규모, 한국 건설사 미수금 처리 방안 등을 e메일로 문의했지만 답장이 없어 직접 찾아간 터였다. ‘어디서 설명을 들을 수 있느냐’고 묻자 목소리를 낮추더니 “솔직히 말하면 어디서도 원하는 답변을 얻을 수 없을 것 같다. 이것이 두바이 방식”이라고 말했다.

두바이는 그동안 세계의 돈을 끌어들이며 급속한 경제 발전을 이뤘다. 하지만 취재 중에 실감한 것은 ‘소프트웨어’의 측면에서 두바이는 아직 선진국이 되려면 멀었다는 사실이다. 두바이 정부는 국영기업 두바이월드에 대해 채무상환유예를 신청한 지 일주일이 다 돼서야 “두바이 정부는 두바이월드와 별개”라는 공식 입장을 내놓았다. 내년 5월까지 만기가 돌아오는 채권이 얼마인지, 채권단이 어떻게 구성돼 있는지, 구조조정을 어떤 식으로 할지 등도 불확실하다.

정확한 통계도 구하기 힘들다. 부동산 버블이 문제가 되자 두바이 정부는 올해 초 두바이 전역에 대한 ‘임대료 현황(Rental Index)’을 발표하고 주기적으로 업데이트하고 있다. 하지만 이를 믿는 사람은 많지 않다. 사무실 공실률, 호텔 객실 점유율 등 민간에서 발표하는 통계도 턱없이 과장돼 있다는 것이 현지에서 만난 이들의 평가다.

한 금융회사 관계자는 “최근 두바이 은행들의 3분기 실적이 발표됐는데 부동산 가격 하락에도 불구하고 일부 은행은 순이익이 오히려 늘어난 것으로 나왔다. 위험여신을 제대로 분류하고 충당금을 적절하게 쌓는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금융회사에 대한 건전성 감독, 신용평가 등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다는 지적이다.

그런데도 무하마드 빈 라시드 알막툼 두바이 통치자는 채무상환유예를 신청하기 직전인 11월 초에도 “채무 상환에 문제가 없다”며 자신만만한 태도를 취했다.

어쩌면 두바이는 부자 이웃인 아부다비의 도움을 받아 채무조정에 성공하고 이번 유동성 위기를 넘길 수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잃어버린 신뢰를 회복하는 것은 다른 문제다.

신뢰는 투명한 정보 공개, 철저한 감시, 당국자의 책임 있는 발언과 행동에서 나온다. 지금 두바이가 맞닥뜨린 시련은 ‘유동성 위기’가 아니라 ‘신뢰의 위기’라는 것이 현지 취재를 통해 내린 결론이다.

―두바이에서

장원재 경제부 peacechao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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