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곽금주]‘연약한 찻잔’ 만드는 과잉 교육열

  • 동아일보
  • 입력 2009년 12월 2일 03시 00분


수능이 끝났다. 수능 때만 되면 우리나라 학부모의 열기를 실감하게 된다. 효험이 있다는 팔공산 갓바위에서 3000배를 하는 수험생의 부모, 수능 1교시가 시작되어도 고사장을 떠나지 않고 염주나 묵주를 들고 기도하는 어머니들. 연일 뉴스의 헤드라인을 장식하는 치맛바람, 과열된 사교육 열풍, 지나친 대학입시 경쟁, 조기 유학, 기러기 아빠 같은 사회적 문제들. 이 모든 것이 한국 부모들의 과잉 교육열을 반영한다.

사실 이러한 부모들의 자녀 과잉보호 현상은 최근 다른 여러 나라에서도 급증하고 있다. 미국의 원조 극성 엄마는 제2차 세계대전의 영웅 더글러스 맥아더 장군의 모친인 핀키 여사라고 한다. 1899년 아들이 육군사관학교에 입학하자 같은 동네인 웨스트포인트로 이사해 매일같이 아파트에서 망원경으로 캠퍼스를 내려다보며 아들이 열심히 하는지 감시했다고 한다. 미국 주간지 타임 최근호에서는 과거 핀키 여사와 같은 부모는 극히 드물었으나 최근 부모의 자녀 과잉보호가 지나치게 증가하고 있음을 커버스토리로 다루고 있다.

여기에 소개된 것을 보면 다섯 살짜리 아이가 연필을 잘 못 쥐자 가정교사를 고용해 연필 쥐는 법을 가르치고, 마당에 있는 놀이용 나무집에까지 인터넷을 연결해준다. 이런 아이들이 성장하면 혼자서는 아무것도 못하는 연약한 성인이 된다. 미국 대학 학장들은 최근 신입생들이 작은 스트레스도 견디지 못하는 연약한 ‘찻잔(teacups)’이라고 걱정한다. 새로 입사한 명문대 출신자들의 문제 해결력은 상상을 벗어날 정도로 낮다고 지적하고 있다.

학부모들의 동조현상과 과시욕

늘 아이들 머리 위에서 빙빙 돌고 있는 헬리콥터 부모의 극성은 아이의 발달에 결코 긍정적이지 않다. 아이들 발달에 중요한 것은 발달시기에 맞는 적절한 보호(care)와 자극이지, 그보다 넘치거나 부족한 보호와 자극은 도리어 해가 됨을 발달심리학자들은 이미 강조했다. 그러나 많은 부모가 학자들의 연구는 연구일 뿐이라고 일축해버리고 옆집 엄마들의 이야기, 학부모 모임에서의 정보를 더 중요하게 생각한다. 특히 한국 부모들이 더욱 그렇다. 미국과 한국 간 비교 연구에 따르면 한국 청소년들이 대학입시로 인한 학업 스트레스가 훨씬 더 컸고, 우울증 또한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최근 스트레스를 못 이겨 수능 당일 자살한 강원도의 한 학생처럼 수능 때면 일부 청소년이 목숨을 끊는 현상은 우리나라에서 두드러진다. 자녀들의 건강한 발달과 성공, 행복을 무엇보다 중시하는 부모들이 도리어 아이들에게 해가 되는 일을 자초하는 것 아닐까.

한국은 남을 의식하는 문화가 유난스럽다. 부모가 다른 부모는 무얼 하는가에 관심을 갖고, 남에게 과시하고자 하는 욕구를 자녀를 통해 해소한다. 인간은 몇 명만 모여도 집단이 형성되고 그 안에 보이지 않는 집단력이 생겨서 집단의 힘에 동조하는 경향이 있다. 특히 공포나 불안이 높아질 때에는 자신의 판단보다 주변 사람들의 판단이 더 옳다고 생각하는 더 큰 동조가 생긴다.

미국 조지아대의 아브라함 테세 팀의 연구에 따르면 동조 행동은 사회적 압력의 정도, 자기 의심에 영향을 받는다. 실험 참가자들은 일련의 소리를 듣고, 각 쌍의 소리 크기가 얼마나 다른지 판단한다. 자신이 판단하기에 앞서 다른 사람들의 답을 먼저 듣게 된다. 이때 한 명의 답만 알게 되는 경우와 세 명 이상 답을 먼저 알게 되는 조건이 있다. 그 결과 세 명 이상의 답을 알게 되는 조건, 즉 사회적 압력이 더 클수록 타인의 의견에 동조했고, 자기의심이 높을수록 동조 경향은 높았다.

날개 놓아줘야 더 멀리 높이 난다

이처럼 자녀 교육에서도 주변 사람들이 하는 행동을 견주어 볼수록 부모는 자신의 판단을 의심하며 주변 사람들에게 무작정 동조하게 된다. 또한 자녀교육 자체에 집중하기보다는 주위의 시선을 의식하여 과열된 교육열을 보이게 된다.

현재 우리 사회의 과도한 교육열은 학부모 스스로 내린 합리적인 의사결정에 의한 것이 아니다. 불안심리에 따른 동조 현상이고, 주변을 의식한 과시욕일 수 있다. 이제 친구 따라 강남 가는 시대는 지났다. 부모들은 진실로 자신의 소신과 교육철학에 따른 교육열인가를 반성해 보아야 한다. 부모들이 자신의 판단에 따라 아이들에게 무거운 짐을 벗게 해 줄수록 그들은 더 멀리 더 높이 날아갈 수 있다. 내 아이의 날개를 붙잡고 남이 하는 날갯짓을 따라하기보다는 진정으로 나는 방법을 가르쳐주도록 하자.

곽금주 객원논설위원·서울대 교수·심리학 kjkwak@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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