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혁규 전 경남지사는 2003년 12월 ‘정치권의 구태 청산’과 노무현 대통령에게 힘을 실어 줄 필요성을 내세우며 한나라당을 탈당하고 지사직을 사퇴했다. 이듬해 노 대통령 경제특보에 임명되고 열린우리당 국회의원이 됐으나, 소망했던 총리직과 대권에는 이르지 못했다. 심대평 전 충남지사는 2006년 3월 ‘충청이 주인 되는 선거혁명’을 내세우며 지사직을 사퇴했다. 지난해 총선에서 이회창 총재와 함께 자유선진당을 창당했지만 올 8월 총리직을 둘러싸고 이 총재와의 불화로 탈당했다.
▷이완구 충남지사가 어제 정부의 세종시 수정 방침에 반발해 지사직을 사퇴했다. “세종시 원안 추진에 지사직을 걸겠다는 약속을 수차례 했다. 약속을 지키지 못하게 된 점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한다”는 이유를 내세웠다. 행정중심복합도시특별법과 이명박 대통령의 이행 약속을 믿고 원안 이행에 지사직을 걸어온 처지에서 하루 아침에 논리를 바꿔 도민을 설득하는 데 한계가 있다는 얘기다. 원안 변경 여부를 논의하는 과정에 참여한 적도, 참여를 요청받은 적도 없다는 것이 그의 불만이다. 하지만 수정안의 구체적인 그림이 나오지 않은 상황에서 국민과 도민을 위한 해결책을 찾아야 할 지사가 사퇴부터 해버린 것은 무책임한 행동이라는 비판을 들을 만하다.
▷한나라당 탈당 여부에 대해 그는 “견해가 달라도 당내에서 싸우는 것이 진정한 정당정치”라며 “한나라당을 굳게 지킬 것”이라고 했다. 재선의원을 지내면서 정치인에게 ‘철새’ 전력이 얼마나 무거운 천형(天刑)인지 뼈저리게 느껴본 그는 아무리 거창한 명분을 내세워도 탈당만큼은 피해야 한다는 점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듯하다. 이 지사가 사퇴 기자회견을 충남도청이 아닌 국회에서 한 것도 뒷말을 낳고 있다.
▷이 지사가 지역정서를 업고 충청 맹주로 도약하려는 ‘사퇴정치’를 하고 있다는 것이 정치권의 지배적 분석이다. 총리직과 대권에도 깊은 관심을 보여 온 그가 이명박 정부와 한나라당, 박근혜 전 대표를 상대로 다양한 ‘그랜드 바겐’을 염두에 두고 있을 것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하지만 수정안이 나오고 충청 민심에도 변화가 올 경우 그의 ‘지나치게 빠른 행보’가 되레 자신에게 부메랑으로 돌아올지 모른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