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박형준]공정위의 칼, 뿔을 자를까… 소를 잡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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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09년 12월 4일 03시 00분


공정거래위원회는 2일 6개 액화석유가스(LPG) 업체의 담합 혐의에 대해 사상 최대 과징금인 6689억 원을 부과했다. 올해 7월 퀄컴에 부과한 기존 최대 과징금(2600억 원)의 배가 넘는 규모에 LPG 업체는 물론 산업계 전체가 충격을 받은 모습이다. 이 중 한 업체는 지난해 당기순이익의 3배가 넘는 과징금을 부과 받았다. 자칫 기업 자체가 휘청거릴 수도 있다.

LPG 업계는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공정위가 업종 고유의 특수성을 무시한 결정을 내렸다”고 항변한다. LPG는 품질 차이가 거의 없어 소비자들이 가격에 민감하고, 이 때문에 LPG 공급가격은 최저 가격에 맞춰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공정위는 단호한 모습이다. 공정위 고위 당국자는 3일 “과점(寡占) 상태 기업들이 주장하는 ‘업종 고유의 특수한 상황’은 변명에 불과하다”며 “선도 업체가 국제가격 오름세를 이유로 국내 가격을 올리고, 다른 업체들은 이 가격을 따라 하는 게 제대로 된 것이냐”고 반문했다.

타당한 지적이다. 정유사들은 국제시세가 올랐다며, 혹은 원-달러 환율이 올라(원화가치 하락) 수입가격이 뛰었다며 휘발유 소비자 가격의 인상이 불가피하다고 말해왔다. 그렇다면 이는 ‘땅 짚고 헤엄치기’ 식의 경영이 아닌가 하는 의문을 지울 수가 없다. 원가 절감, 공급망 선진화, 내부 혁신 등을 통해 소비자가격 상승분을 흡수하려는 노력을 얼마나 했는지 묻고 싶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근 공정위의 행보는 나가도 너무 많이 나갔다는 느낌이 짙다. 공정위는 소주, 기름값, 통신요금 등에 대해 전방위로 담합 조사를 하면서 “관련 규정이 허용하는 범위 내에서 최대한 엄중 조치할 것”이라고 공공연히 밝히고 있다.

정호열 공정위원장은 스스로 ‘친(親)시장주의자’로 분류하지만 시장경제의 주역인 재계가 ‘공정한 경쟁을 촉진하는 것을 넘어 기업의 군기를 잡으려는 것 아니냐’고 지적하는 목소리를 흘려듣지 말아야 한다. 또 담합은 오랜 시간 정밀하게 분석해야 하는데 마치 일정을 미리 정해놓고 조사하는 것처럼 비치는 것도 모양새가 좋지 않다.

반칙 행위를 잡아내려는 공정위의 노력은 권장돼야 한다. 하지만 소의 뿔을 바로잡으려다 소를 죽이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되는 것처럼 과도한 의욕이 정상적인 기업 활동을 위축시키는 우(愚)를 범해서는 안 될 것이다. 이는 시장경제의 파수꾼으로서 공정위의 입지를 더욱 탄탄하게 하는 길이기도 하다.

박형준 경제부 loves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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