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정호승]태안 갈매기의 꿈

  • 동아일보
  • 입력 2009년 12월 5일 03시 00분


“소라야, 잘 지내니?/기름이 바다를 덮었는데 괜찮니?/너는 집도 없는데 어떡하니?”

‘소라에게’라는 제목의 이 동시는 충남 태안 앞바다 기름유출 사고의 고통을 극명하게 드러낸다. 지난해 발간한 환경문제 작품집 ‘강물아, 바다야’에 실린 이 동시는 당시 명지초등학교 1학년 김현수가 썼는데 지금 그 ‘소라’는 어떻게 됐을까.

서해에 검은 기름파도가 밀려온 지 7일로 2년째다. 기름투성이 서해를 살리려고 온 국민이 한마음이 됐던 열기를 잊을 수 있을까. 지금 서해는 2년 전과는 너무나 다르다. 천리포와 만리포 해역은 청정해역이라고 보도된다. 검은 파도가 밀려오던 바다가 2년 만에 해수욕을 할 만큼, 수산물을 먹을 수 있을 만큼 회복됐다는 사실은 놀라운 일이다.

세계에 유례가 없는 일로 일컬어지는 이 일은 기름유화제 때문도, 정부의 노력 때문도 아니다. 한 사람 한 사람 스스로 우러나온 사랑과 봉사의 땀방울, 그 땀방울의 힘 때문이다. 노란 비닐 옷과 초록 장화를 신고 호미와 흡착포를 들고 기름때가 엉겨 붙은 바위 틈새를 누비던 저 많은 국민. 길게 인간 띠를 이루며 원유를 퍼 나르던 남녀노소. 무슨 생각을 하며 왜 아픈 허리를 참아가며 방 청소하듯이 기름을 제거했을까.

조국의 바다를 사랑했기 때문이다. 후손에게 빌려온 자연을 더는 파괴해서는 안 된다고, 맑고 깨끗하게 있는 그대로 보전해서 돌려줘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하루아침에 삶의 터전을 잃은 태안 어민의 삶을 자신의 삶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기름범벅이 된 채 먼 수평선을 바라보던 뿔논병아리 사진 한 장이 지워지지 않는다. 어디 그 논병아리뿐일까. 바다쇠오리, 가마우지 등 모든 바닷새는 처참한 일생을 보냈다. 갯가재며 고둥이며 조개도 다들 숨을 잃었다. 그들의 새끼는 서해안 바다 위를 신나게 난다. 태안의 기름때를 한마음으로 제거해준 국민에게 고맙다고 인사라도 하는 듯하다.

칠레 작가 루이스 세풀베다가 쓴 동화 ‘갈매기에게 나는 법을 가르쳐준 고양이’에는 유조선 기름덩어리를 뒤집어쓰고 죽은 갈매기 이야기가 나온다. 갈매기 켕가는 사력을 다해 날아오르다가 함부르크 바닷가 마을에 떨어져 검은 고양이 소르바스에게 세 가지 약속을 받아낸 뒤 죽는다. 알을 잡아먹지 말고, 새끼가 태어날 때까지 알을 지켜주고, 어린 갈매기에게 나는 법을 가르쳐 줄 것. 소르바스는 약속을 지킨다. 어린 갈매기가 두려워 날지 않으려고 할 때 말한다. “날개만으로 날 수 있는 건 아니란다. 오직 날려고 노력할 때만이 날 수 있는 거란다.”

이 말은 우리에게도 해당된다. 태안 바다는 청정해역이라는 날개를 다시 얻었다. 그 날개로 다시 날기 위해서는 노력하지 않으면 안 된다. 청정바다로 회복됐다고 해서 원래 상태로 완전히 복원됐다고 여길 수는 없다. 우리는 더는 바다생명에게 죽음의 고통을 안겨선 안 된다. 그들의 삶은 우리의 삶이다. 꽃이 피지 않는 도시를 생각할 수 없듯이 갈매기가 날지 않는 바다를 상상할 수 없다. 초고층 빌딩이 죽순처럼 솟아나는 대도시라 할지라도 골목골목에 꽃이 피어야 도시이며, 아무리 푸른 바다라 할지라도 갈매기가 날아다녀야 바다다.

만리포엔 ‘서해의 기적, 위대한 국민’이라고 새겨진 기념비가 서 있고, 이원방조제 벽면엔 ‘에버그린 희망벽화’라는 세계 최대 규모의 벽화가 그려졌지만 피해 주민은 시위를 벌인다. “조개도 캐고 굴도 따고 홍합도 따야 하는데 올해는 없어요”라고 호소하는 말처럼 지금 태안 바다는 예전의 그 바다가 아니다. 사고 2주년을 맞은 오늘, 아직도 폐허가 된 굴 양식장 목책에 앉아 하염없이 바다를 바라보는 어민이 우리 자신임을 깨달을 수 있어야 한다.

정호승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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