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정성희]進化하는 뱀파이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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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09년 12월 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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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센트럴 플로리다대 물리학과 코스타스 에프티미우 교수와 소항 간디 교수는 2007년 “뱀파이어는 존재할 수 없다”는 사실을 수학으로 입증했다. 이들은 뱀파이어가 처음 등장한 시기를 1600년 1월 1일로, 당시 세계 인구를 5억3687만 명으로 잡았다. 한 뱀파이어가 두 사람의 목의 피를 빨고 그 두 사람이 각각 두 사람씩의 피를 빠는 식으로 계산할 경우 2년6개월 만인 1602년 6월이면 인류는 멸종한다는 것이다. 먹잇감을 구할 수 없는 뱀파이어는 어떻게 되었을까?

▷유머감각이 엿보이는 이 연구결과는 경제학자까지 가세해 학계에서 재미있는 논쟁을 일으켰다. “뱀파이어는 바보가 아니기 때문에 식량원을 다 먹어치우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반론이 그것이다. 식량원이 부족하면 뱀파이어의 증가세가 위축된다는 논리도 성립한다. 뱀파이어는 현대 대중문화에서 가장 매력 있는 콘텐츠다. 피를 마시는 것은 인간의 근원적 공포심을 자극한다. 십자가, 마늘, 쇠말뚝 같은 것에 무너지는 설정은 이들의 실존적 취약성을 보여준다. 자신이 원해서 그렇게 된 것이 아니라는 상황은 존재의 비극성을 드러낸다.

▷1897년 아일랜드 작가 브램 스토커가 소설 ‘드라큘라’를 써낸 이후 무섭고도 신비로운 뱀파이어의 텍스트는 수많은 소설, 영화로 변주됐다. 1950년대 크리스토퍼 리 주연의 일련의 드라큘라 영화가 미녀의 목덜미를 깨무는 성적인 코드의 드라큘라를 창조한 이래 뱀파이어는 ‘사랑엔 약한 존재(게리 올드먼 주연의 드라큘라)’로, ‘인간적 고민을 하는 존재(뱀파이어와의 인터뷰)’로, ‘인간을 위해 종족을 사냥하는 존재(블레이드)’로 끊임없이 진화했다.

▷세계가 다시 뱀파이어 열풍이 휩싸였다. 영화 ‘트와일라잇’의 후속편인 ‘뉴문’이 미국에서 개봉 첫날 수입으로 사상 최고기록을 세웠다. 영화의 주인공은 실제 나이는 100세가 넘었지만 17세 소년의 모습을 한 뱀파이어다. 그는 인간 소녀를 사랑하지만 다가갈 수 없는 흡혈귀의 숙명으로 고뇌한다. 틴에이저들이 뻔한 스토리에 열광하고 있다. 하늘 아래 새로운 얘깃거리를 찾기는 어렵다. 뉴문은 진부한 소재도 가공하기에 따라서 얼마든지 새로운 콘텐츠로 거듭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정성희 논설위원 shch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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